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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새>(아시아 문학선 022)
| 통권 : 단행본 | | HIT : 42 | VOTE : 7 |
아쿠타가와 상,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 수상 작가 메도루마 슌 장편소설

아시아 문학선 22권. 아쿠타가와 문학상,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수상 작가 메도루마 슌의 첫 번째 장편소설 『무지개 새』가 일본 현지 출간 13년 만에 아시아 문학선으로 소개된다. 메도루마 슌은 오키나와전쟁과 미군기지 문제를 문학적 주제로 삼으며, 오키나와의 비극적 역사와 현실인식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내 일본문단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메도루마 슌은 198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해 90년대에는 오키나와전쟁을 둘러싼 기억투쟁을 전개했고 2000년대에는 미국에 의한 폭력지배구조와 오키나와 내부 모순을 이중삼중으로 구조화한 소설을 발표했다. 평생 오키나와를 지키는 소설을 써왔고,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작품 활동보다 반기지 투쟁 활동에 힘을 쏟았다.

『무지개 새』는 2006년 작품으로, 견고한 폭력구조를 제의적으로 파괴하는 의식의 한 형태로 보여준 수작이다. 제목이 주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그것과는 전혀 관련 없는 파괴의 지옥도를 선보이는 이 소설은, 학교폭력, 성매매 유착 폭력, 미군의 폭력 등의 풍경이 지배하고 있다.

이 지옥을 탈출하는 방법으로 작가가 제시한 것은 ‘파괴’이다. ‘그래 모두 죽어 없어지면 된다.’로 표상되는 통과제의적 파괴는, 지극한 현실에 천착하되 그 현실에 투항하는 게 아니라 그만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신생(新生)의 기운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투사되어, 오키나와에서의 폭력 근절과 평화를 향한 생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잔혹하고 끔찍하며 섬뜩한, 환멸과 절망이 버물어진 파괴의 지옥도

오키나와를 지키는 일본 ‘오키나와’의 대표작가 메도루마 슌의 『무지개 새』는 2006년에 출간되어 가혹한 폭력과 강렬한 메시지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장편소설이다. 잔혹하고 끔찍하며 섬뜩한, 환멸과 절망이 버물어진 파괴의 지옥도를 그려낸 『무지개 새』는 역설적으로 폭력 근절과 평화를 향한 생의 의지가 담겨 있다. 소설은 성노예 상태에 빠진 미성년자 마유와 그녀를 관리하는 조직폭력배 일원 가쓰야가 일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성매매를 한 남자의 사진을 찍고 그걸 미끼로 돈을 듬뿍 뜯어내면 된다고 히가가 처음 말했을 때부터 가쓰야는 그것이 참으로 난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가쓰야의 역할은 여자를 돌봐주는 것과 사진을 찍어서 차의 종류와 번호판, 그리고 남자의 특징 등을 메모해서 정리해주는 것이다. (...) 호텔에 들어가거든 남자가 샤워를 하는 동안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라고 여자들에게 단단히 교육을 시켰다.(본문 중에서)

마유는 매춘현장에서 자신의 성을 산 남자를 상대로 잔혹하고 엽기적 방식으로 성폭력을 가하고, 가쓰야는 조직폭력배 최상단에 위치한 히가의 지배에 휘둘리며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폭력구조의 악순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학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중심으로 오키나와 사회 내에서 존재조차 인지되지 못하는 성노예 미성년자를 내세워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음은, 오키나와에 군사기지가 밀집돼 일어나는 폭력의 연쇄를 비판한 도식적 내용이 아님을 암시한다. 또한 폭력구조가 외부에 의해서만 강제된 것이 아니라 내부와 얽혀 이중삼중으로 구조화된 것임이 드러난다.

“필요한 건 훨씬 더 추악한 것이라 생각했다”

1995년 9월 4일, 오키나와 북부 나고에서 미군 셋이 오키나와 소녀를 성폭행한다. 섬 전체에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군기지 철폐 투쟁이 이어졌다. 전쟁 위협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2차 세계대전의 후과와 냉전 상징인 군사기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해갔다. 북부 출신 메도루마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건 물론이다.

“매달아 놓으면 되잖아. 미군병사의 아이를 잡아다가 발가벗겨서 58호선 야자나무 아래에 철사로 매달아 놓으면 되지. 진짜로 미군을 쫓아버릴 생각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그 말이 맞아. 히가가 말한 그대로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8만 5천 명에게 호소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필요한 건 훨씬 더 추악한 것이라 생각했다. 소녀를 폭행한 미군병사 셋의 추악함과 균형을 이루기라도 하듯. (본문 중에서)

메도루마가 1998년부터 집필하여 2006년 출간한 『무지개 새』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탄생했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는 1995년 이후 오키나와의 정치적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나아가 1995년 사건이 현재로 이어져 헤노코 신기지 건설과 반대 투쟁, ‘헤노코 기지’ 건설의 찬반투표를 묻는 현민투표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이 소설은 과거가 아니라 동시대적이다.

오키나와인이 폭력구조를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상상력조차 결여하고 있음을 소설은 파헤친다. 소녀폭행사건을 일으킨 미군을 응징하는 논리구조를 내세우는 한편 오키나와 사회의 나태함을 파고든다. 그런가 하면, 소설은 폭력을 정당화하기보다 ‘가장 저열한 방법’으로 오키나와 문제 혹은 자기 부정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폭력 근절과 평화의 세상을 향한 생의 의지

‘무지개 새’라는 제목과 ‘오키나와’라는 지역이 주는 이미지는, 낭만적 신비와 환상의 아우라와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지개 새』는 그 아우라를 상상하거나 목도할 겨를 없이 폭력에서 시작해 폭력의 과정을 거쳐 폭력으로 끝난다. 폭력의 닫힌 연쇄구조로서 폭력의 아수라를 목도하게 된다.

드러나 있는 폭력과 인지되지 않는 폭력과 일상적인 폭력까지 연계되어 있는 구조와 행태를 염두에 둘 때, 소설의 절대적 피해자인 마유의 폭력 및 살해 행위는 오키나와를 폭력 연쇄와 닫힌 구조 안에 봉합해버림으로써 현재적 비극성과 미래적 부재성을 드러낸다.

암울한 디스토피아 극복과 미래의 전망에의 실낱같은 희망은 역설적으로 마유의 등에 새겨진 ‘무지개 새’ 문신에 있다. 누군가에겐 삶이고 누군가에겐 죽음일 무지개 새 전설이 그것인데,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무지개 새 전설이 함의한 진실이거니와 메도루마 슌이 『무지개 새』를 통해 투사한 염원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1945년 오키나와전 이후, 평화와 자립을 갈구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군과 일본정부라고 하는 이중의 폭력적 침략자와 끈덕지게 싸워왔다. 메도루마 슌 문학은 언제나 이 두 세계를 시야에 넣으면서 남녀노소에 의해 펼치는 투쟁의 역사를 끄집어내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투쟁의 실마리를 발견해내 미래의 투쟁과 연결시킨다.
다카하시 토시오(문학평론가, 와세다대학 문학연구과 교수)

오키나와의 온갖 폭력구조 속에서 고통과 상처를 앓아온 마유와 가쓰야가 지옥의 현실을 파괴하고 죽이는 행위는, 오키나와에서 자행되는 모든 폭력에 대한 근절과 평화의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의 의지와 다름 아니다. 메도루마는 오키나와의 근현대를 아우르는 『백년의 고독』과 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희망을 표출하며 『무지개 새』로 지세한 생의 의지를 이어갈 생각이다.

□ 목차

무지개 새

옮긴이의 덧붙임_신생을 향해, ‘자기 부정’의 심연을 파헤치다(곽형덕)

해설_폭력의 미망(迷妄)을 응시하며 헤쳐 나오는(고명철)


□ 추천사

현대 일본어 문학은 메도루마 슌이라는 희유한 존재를 통해서만, 지구적 규모에서 투쟁의 연대를 새기고 있는 세계문학을 향해 열려 있을 수 있다.
다카하시 토시오(문학평론가, 와세다대학 문학연구과 교수)

가차 없는 폭력, 강렬한 메시지. 「물방울」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메도루마 슌이 2006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 장편소설은 현대 오키나와를 그린 걸작이다.
이케자와 나쓰키(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가)

이 소설을 읽고 오키나와가 미군기지에 의해 잠식돼 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다. 전쟁과 밀접한 군대가 어떻게 인간을 어떻게 망치는가라고 하는 현실 문제를 이 소설은 알리고 있다.
구로코 가즈오(일본근현대문학 평론가)

『무지개 새』를 읽을 때 우리는 소설에 나타난 가혹한 폭력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볼 수 없게 된다. 마치 절대적 폭력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독자는 가슴에 고통을 새기게 되고, 그 고통을 직감하는 것은 오키나와에서의 반기지 운동과 이어진다.
나카무라 다카시(프랑스문학 연구자)


□ 지은이 소개

지은이 메도루마 슌
1960년 오키나와 현 북부에 위치한 나키진에서 태어났다. 류큐대학 법문학부에 들어가 문학 활동 및 반기지 활동을 시작했다. 젊은 시절 오에 겐자부로, 나카가미 겐지, 가브리엘 마르시아 마르케스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기간제 노동자, 경비원, 학원 강사 등을 했다. 이후 현립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 2003년까지 일했다. 1983년 「어군기」로 등단한 후 1997년 「물방울」로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2000년에 「혼 불어넣기」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과 기야마 쇼헤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미군 아이를 살해하는 내용의 「희망」(아사히신문 1999.6.26.)으로 일본 사회와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장편소설로는 『무지개 새』(2006)와 『기억의 숲』(2009)이 있다. 한국에는 단편 모음집 『혼 불어넣기』(2008)를 시작으로 『물방울』(2012) 『오키나와의 눈물』(2013) 『어군기』(2017) 『기억의 숲』(2018)이 출간돼 있다. 현재는 오키나와 반전 평화 운동의 최전선인 헤노코 앞바다에서 카누를 타고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해상 저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언제 실현될지 모르지만 오키나와 근현대의 장대한 역사를 담은 대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다.

옮긴이 곽형덕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와 컬럼비아대학 대학원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연구과(EALAC)에서 일본 근현대문학을 수학했다. 현재 명지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 문학』이 있고, 번역서로는 『돼지의 보복』 『지평선』 『한국문학의 동아시아적 지평』 『어군기』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긴네무 집』 『니이가타』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일본 현대문학』 『김사량, 작품과 연구 1-5』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마유의 등에 새겨진 무지개 새가 화끈거리는 피부에 선명히 부각돼 있었다. 왼쪽 어깨를 향해 비스듬히 위를 향하고 있는 새는 붉은색과 노란색, 푸른색, 녹색, 보라색 날개깃에 싸여 무지개색으로 채색된 날개를 좌우 어깨뼈 위로 넓게 펼치고 있었다. 빛의 분말을 뿌리며 긴 꼬리가 허리와 옆구리로 흘러내리고 머리의 장식용 깃털은 마유의 목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다.
_31쪽

정말로 단 한순간의 차이로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가쓰야는 화면에 크게 비친 아이돌 소녀의 웃는 얼굴을 쳐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 한순간의 차이가 없었더라면 마유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었겠지. 그건 비단 마유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런 여자들을 몇 명이나 봐왔다.
_44쪽

“인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돈을 낳는 생물을 사육하는 거야.”
히가의 생각을 대변이라도 하듯 마쓰다가 가쓰야에게 몇 번이고 했던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가출해서 히가에게 속고 있는 바보 같은 중학생이나 고교생은 어찌 되든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_83쪽

전날 주택 앞에서 바비큐를 하고 있던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동생과 함께 놀고 있던 소녀가 오키나와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면 얼마나 소란 법석을 떨까? 하고 생각해봤다. 미군병사에게 오키나와 소녀가 당했다면 똑같이 대갚음해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실행하는 녀석이 50년 동안 단 한 명도 없었다니. 이곳은 습격을 하는 놈과 당하는 놈이 정해져 있는 그런 섬이다.
_116쪽

“매달아 놓으면 되잖아. 미군병사의 아이를 잡아다가 발가벗겨서 58호선 야자나무 아래에 철사로 매달아 놓으면 되지.”
별안간 히가가 입을 열었다.
“진짜로 미군을 쫓아버릴 생각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그 말이 맞아. 가쓰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히가가 말한 그대로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8만 5천 명에게 호소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필요한 건 훨씬 더 추악한 것이라 생각했다. 소녀를 폭행한 미군병사 셋의 추악함과 균형을 이루기라도 하듯.
_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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