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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호 (통권 제29호) : 스토리텔링 아시아 -이스탄불
| 통권 : 2013년 | | HIT : 984 | VOTE : 67 |
계간 ASIA 2013년 여름호 (통권 제29호)
STORYTELLING ASIA—이스탄불 Istanbul


발행일 2013년 6월 30일
값 13,000원
출판사 아시아
분야 문예 계간지
ISSN 1975-3500 32|324쪽



▶ASIA 잡지 “스토리텔링 아시아” 그 여섯 번째 이야기, 터키 제1의 도시 ‘이스탄불’ 특집편  

▶이슬람과 유럽이라는 문명의 숨결이 생생히 살아있는 신비의 도시, 이스탄불.  -에크멕, 양고기 케밥, 할랄 양고기, 차와 커피에 드러나는 제국의 풍모와 건축박물관으로서의 이스탄불          

▶한국현대소설 중 최초로 터키인이 등장하는 한설야의 「향비애사」

▶진정한 터키의 문학정신을 찾아서
-소설가 손홍규의 <이스탄불에서 마음을 놓치다>    

▶귄터 발라프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리뷰  
-귄터 발라프가 독일에서 터키 이주노동자로 위장 취업해서 겪은 것을 기록한 르포문학

▶고인환 교수의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방황’을 그린 『아시아의 고아』리뷰편 <이성의 붕괴와 안주의 불가능성>

▶영어로 읽는, ‘젊은 작가’ 오한기의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어 번역문과 작가의 창작노트, 평론가 정은경의 비평문 ‘서부극 연가’ 수록



상상 속 민족 ‘터키인’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리고 그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터키 문학 번역가이자 튀르크 연구자인 오은경 교수는 출발부터 혼종과 혼혈을 기반으로 했던 아나톨리아 땅에서 ‘터키’와 ‘터키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역사는 의외로 짧다고 설명한다. 오스만 제국이 몰락한 이후 터키 공화국이 출범하고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터키인들을 통합하면서 이 ‘상상의 공동체’가 비로소 구성되었으니, 시간적으로는 백 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세계경제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터키 경제는 활황을 이어갔다. 그들의 풍요로운 생활과 문화는 유럽인의 빠듯하고 궁색한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유럽의 경제 침체도 오래 지속되자 터키인들은 다시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때 그들 스스로 폐기했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서도 새롭게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목민이었던 그들의 조상 튀르크인이 천 년 전 중앙아시아 땅을 떠나 아나톨리아에 정착했던 역사를 새삼 되새기게 만들었다.
  

동양과 서양에 걸친 어정쩡한 정체성이 그대로 투영된
‘이스탄불 음식의 풍성함’

한국의 터키통 전문가 이희수 교수는 1600년간이나 두 제국의 수도로 인류를 호령했던 이스탄불이야말로 입맛에 맞는 어떤 음식도 고를 수 있는 도시라고 전한다. 돌궐과 위구르를 이어오는 중앙아시아 초원유목에 서아시아의 오아시스 유목이 더해지고, 아나톨리아 반도의 깊은 도시문화는 물론 1천 년 이상 유럽과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온갖 삶의 방식들이 음식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빵과 초르바를 먹고 나면 주식인 양고기 요리가 나온다. 케밥은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되었지만, 오스만 제국을 거치면서 아랍 전역은 물론 터키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양고기가 주식인 곳에서는 다양한 양젖 음식이 함께 발달한다. 양젖은 그대로 마시고, 나머지는 발효시켜 요구르트를 만든다. 요구르트의 어원이 터키어인 점은 터키 사회 속의 요구르트의 대중성과 오랜 역사를 잘 설명해준다.  


이스탄불 건축의 꽃 ― ‘모스크’  
오스만 제국의 정복자 술탄 메흐메트(Mehmet) 2세는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이자 동로마 제국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성 소피아 대성당을 모스크로 개조함으로써 이스탄불의 등장을 세상에 알렸다. 그 이후로 이스탄불은 끊임없이 모스크, 하맘(목욕탕), 메드레세(학교), 병원, 왕궁 등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을 선보이면서 새로운 이슬람 건축 장르를 열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와 오리엔트의 단단한 토양 위에 그리스와 로마를 끌어안고, 비잔틴 건축을 모방하면서 재창조한 중첩된 문화의 발현이었다. 받아들임과 아름다운 조화, 어정쩡한 혼돈이야말로 이스탄불 건축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가슴속 열망을 불태운 터키 문학의 대가 ‘야샤르 케말’  
「이스탄불에서 마음을 놓치다」

진정한 터키의 문학정신을 찾아 떠난 소설가 손홍규는 한 위대한 문학적 정신과의 만남에 대하여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격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터키를 대표하는 작가로 노벨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을 꼽는다. 그러나 그는 오르한 파묵은 전형적인 유럽지향적 인물로서, 그의 소설 밑바닥에는 “세계시민을 자처하는 제국주의”가 흐른다고 일갈한다. 대신 진정한 터키의 문학정신은 야샤르 케말과 아지즈 네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선명하게 내세우고 있다.
“나는 공산주의자다. 이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뭐가 무서워 감추겠느냐.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말라. 문학은 바로 네가 선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거다.”  


한국 문학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터키 공주의 이야기  
한설야, 「향비애사(香妃哀史)」

1942년 『야담』에는 한설야의 「향비애사」라는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향비’라는 천하절색의 터키 공주를 통하여 과거 오스만 제국으로 대표되는 터키의 강렬한 자주정신을 형상화하고 있다. 건륭제가 서역의 아무루사나 왕과 그 왕국을 정복하고 향비는 붙잡히는데 시비마저 배신하자, 향비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발표 연도인 1942년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볼 때 일제 말기 내선일체로 인해 민족의 자주정신이 해체되고 있는 현실에 반기를 들고자 했던 한설야의 자주정신이 담겨 있다.  


터키인의 삶의 내음 가득한 「쿠즈군죽 이야기」  
쿠즈군죽은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의 아시아 쪽에 면한 작은 주거지로, 귈숨 젱기즈는 쿠즈군죽에 사는 다양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이스탄불에서는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는지 체감할 수 있다.    
“파티 술탄 메메트는 기독교인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그들의 수호자임을 자처하고 셰리아트에 따라 노예의 5분의 1을 해방시켜 주었고, 그들에게 페네르 지역의 주택을 하사했다. 이스탄불에 건설된 새로운 그리스 마을은 이렇게 탄생했다. 세 종교의 성스러운 장소인 쿠즈군죽에서는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터키인 들이 각기 다른 신앙을 가졌음에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평화롭고 관용적인 분위기에서 살아가
고 있다.”  


젊은 작가 오한기의 단편소설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비평가 정은경의 <서부극 연가> 中

사람들은 서부극의 종말을 이야기하지만, ‘나’에게 서부극은 여전히 유효한, 아니 ‘그래야만 한다.’ “서부극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부개척시대와 베트남전쟁, 자본주의와 냉전체제, 마르크스와 나치와 무솔리니까지 서부극은 당시 현실과 맥락이 닿아 있고 그 정신은 현재까지 유효했다. 내 생각엔 우리가 오히려 아무 맥락 없이, 혹은 너무나 많은 맥락에 닿아 최면에 걸린 것처럼 비틀거릴 뿐이었다.” (중략)
서부극이라는 낭만적 서사에 대한 그리움을 내세우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이에 대한 체념과 자조적인 조롱을 함께 품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더 이상 화끈한 드라마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문학과 현실에 대한 비가이기도 하다. 233~234쪽


이성의 붕괴와 안주의 불가능성-고인환 교수의 『아시아의 고아』리뷰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방황’을 그린 소설 『아시아의 고아』에 드러나는 비서구문학의 재발견


『아시아의 고아』에 그려진 타이밍의 고뇌와 방황은 『만세전』(염상섭)의 주인공 이인화의 그것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또한 ‘후 노인(할아버지) → 후원칭(아버지) → 타이밍’으로 이어지는 삼대의 삶은, ‘조의관(할아버지) → 조상훈(아버지) → 조덕기’로 표상되는 한국의 1930년대 삶의 풍경(『삼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1940년대 이중어 글쓰기를 통해 암울한 시대를 헤쳐 간 김사량의 모습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작품을 집필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절박한 사연과 겹쳐진다. 이렇듯 『아시아의 고아』는 우리의 현실을 되새김질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242쪽


본문 속에서
결국 나는 이태원에 살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 때문이었다. 내가 이태원에 집을 구한다고 하자 엄마는 펄쩍 뛰었다. 이태원? 거기 위험한 데 아냐? 경상도 시골에 사는 오십 대 아주머니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쳐도 왜 서울에 사는 내 친구들까지 똑같은 소리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왜 이태원에 집을 구해? 이태원이 얼마나 무서운 데인데. (중략)
어느 조사에서 이태원에 자주 가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태원의 이미지를 묻자 상당수의 피조사자가 ‘무서운 곳’이라고 대답했다니, 이태원에 관해 내지인들이 했던 ‘위험하다’는 말은 어느 정도 보편적인 인식인 것 같다. 왜 신림동이나 금호동이나 돈암동이나 월곡동과 달리(이 동네들은 내가 살았던 곳이다) 이태원은 ‘무서운 곳’, 또는 ‘놀기에만 좋은 곳’으로 인식되었을까. 왜 이태원은 우리에게 그토록 피상적인 공간일까.
하재영_ 「이태원, 이방인들의 거리」 23쪽

20세기 초 케말 파샤가 주도하는 독립전쟁이 아나톨리아 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로써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숨통을 쥐고 있던 유럽 열강의 지배도 종식되었다. 1924년, 칼리프 제도가 폐지되고 공화정 헌법이 제정되었다. 신생 공화국은 곧바로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것이 바로 언어와 종교와 인종과 민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터키인’이라고 칭하는 새로운 터키민족주의의 출범이었다. 아르메니아인 학살도, 쿠르드인 박해와 말살 정책도, 아나톨리아 반도의 모든 거주민을 ‘터키인’으로 만들고자 했던 정치적 발상과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오은경_ 「방황하는 이스탄불」 27쪽

블루 모스크 서쪽의 작은 문을 나서면 커다란 광장이 나타난다. 동로마 시대마차 경기장이었던 히포드롬이다. 이곳은 완전히 비잔틴의 고대 분위기 일색이다. 우선 오벨리스크가 높이 솟아 있고, 청동 뱀기둥과 유스티니아누스 기념탑이 열지어 광장에 놓여 있다. 트램바이가 달리는 전찻길을 따라 성 소피아 대성당을 건너면 좁은 입구에 예레바탄 사라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6세기에 완공된 지하 저수궁전이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들어서면 컴컴한 공간 한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흐린 불빛에 비친 물결이 음산한 분위기를 돋운다. 발렌스 수도교를 통해 날라온 물을 여기에 가두었다가 궁전의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336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지하궁전은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귀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같은 기둥이 거의 없다. 그리스 신전 기둥에서부터 제국 각지에서 날라온 각양각색의 기둥들이 저마다 독특한 디자인과 색깔을 머금고 방문객을 반긴다. 그 중에는 얼굴을 옆으로 누인 메두사의 두상을 받치고 서 있는 기둥도 있다. 궁전 바닥에는 아직도 물이 고여 있다. 고대의 신화가 담긴 기둥과 물 사이로 무언가 숨은 사연이 뛰어나올 것 같다.
이스탄불 시청사 맞은편에는 로마 시대 수도교가 지나간다. 초기 비잔틴 시대인 378년 발렌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고 한다. 멀리 외곽에서 물을 퍼올려 이 수로를 따라 지하 저수궁전에 물을 모았다가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의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2층으로 된 수로의 좁은 아치 사이로 자동차가 물밀듯이 지나다닌다. 아타튀르크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스탄불의 신시가지와 구도시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이다.  
이희수_ 모스크의 도시-이스탄불 건축 58쪽

터키 문단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아달렛 아아오울루(Adalet Ağaoğlu)는 자신의 소설 「죽기 위해 눕다(Ölmeye yatmak)」라는 작품에서 ‘여성혁명’과 ‘터키민족주의’라는 대과제 속에서 소외되고 종속되어 왔던 여성들의 삶을 돌이켜보며, 터키의 세속화와 서구화를 추진하고 있는 진보적 남성 지식인들도 전통적 가부장제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더불어 그녀는 다원적, 다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에서 여성은 하나로 묶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안에 녹아들어 있는 ‘차이’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와 작은 시골이라는 공간의 이질성, 그리고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여성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민족과 국가의 번영을 위한 여성혁명을 꾀했기 때문에 그 한계는 너무도 명확할 수밖에 없었다.
오은경_ 국가와 민족, 여성, 그녀의 신체 78~79쪽

터키 노동자들에 대한 독일인의 편견은 2010년 발표된 당시 독일연방은행 이사였던 틸로 차라친의 『독일이 사라진다』에서도 영락없이 반복된다. 이 책은 독일이 50년 이상의 이민 역사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국수주의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민자들 때문에 독일이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하는 차라친은 모슬렘 이민자들이 열등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터키 이민자들이 유전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독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결과 독일사회가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나치 시대에 했던 인종차별 주장과 별 차이가 없다.
이상복_ 귄터 발라프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112쪽

『아시아의 고아』는 근대 문물의 유입으로 점차 퇴락해가는 전통 공동체의 우울한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운제서원’으로 대변되는 유교 중심의 공동체는 일본을 통해 유입된 근대 문물이 침투하자 균열을 일으킨다. 아홉 살의 타이밍은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운제서원’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의 눈에 비친 서당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아편 흡입 도구들과 그 옆에 가로누워 있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인”, 그리고 “정면으로 보이는 벽” 한가운데 걸려 있는 “공자의 초상”이 겹쳐지는 그로테스크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고인환_ 이성의 붕괴와 안주의 불가능성 243쪽




계간 《ASIA》 2013년 여름호 (통권 제29호) 차례
권두언 ‘오래된 미래’의 도시 혹은 교통 공간 이스탄불 _ 이경재 2

이야기 지도 1 이슬람과 튀르크의 충돌
방황하는 이스탄불 _ 오은경 20
제국의 풍모를 드러내는 음식의 맛과 다양성의 혼란 –이스탄불 음식 _ 이희수 35
모스크의 도시-이스탄불 건축 _ 이희수 52
국가와 민족, 여성, 그녀의 신체 _ 오은경 70

이야기 지도 2 이스탄불을 읽다
이스탄불에서 마음을 놓치다 _ 손홍규 86
귄터 발라프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_ 이상복 106
굴강한 두 개의 정신—한설야, 「향비애사(香妃哀史)」_ 이경재 114

이야기 지도 3 이스탄불의 문학
신화 속의 이스탄불 _ 메틴 투란|터키 120
쿠즈군죽 이야기 _ 귈숨 젱기즈|터키 132
현대적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 _ 제말 샤카르|터키 147
돌랍데레 _ 사잇 파익 아바스야늑|터키 154  
이스탄불을 듣다 _ 오르한 벨리 카늑|터키 160
또 하나의 이스탄불 _ 위밋 야샤르 오우즈잔|터키 163
이스탄불 열병 _ 아틸라 일한|터키 164  

또 다른 이야기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_ 오한기 170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창작 노트 _ 오한기 226
서부극 연가 _ 정은경 232
이성의 붕괴와 안주의 불가능성 _ 고인환 241
고층 빌딩 외 1편 _ 김기택 247
바이칼 외 1편 _ 곽효환 254  
탈식민주의적 뿌리와 후식민주의적 날개: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소수자적 극지형 _ 자밀 아메드|방글라데시 261
번역자 약력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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