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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신간] <보통 사람의 글쓰기>
| 통권 : 단행본 | | HIT : 197 | VOTE : 20 |
<보통 사람의 글쓰기>


‘보통 사람’ 이준기 작가가 보통 사람을 위한 글쓰기 책 『보통 사람의 글쓰기』를 들고 찾아왔다. 10여 년 가까이 《중대신문》에서 일하며 석사 학위도 준비했던 저자가, 전문적 글쓰기가 아닌 보통 사람을 위한 글쓰기 책을 내놓은 이유는 무얼까. 이제 갓 국어국문학과 석사 학위를 따고 보통 사람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겠다.

세상을 지배하는 여러 상식과 통념이 글쓰기에도 존재한다. 저자는 보통 사람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호기롭게 도전하며 쓴소리를 던진다. 말하듯 글을 쓰는 데 익숙한 우리들에게 ‘글은 글답게’ 써야 한다고 못을 박고, 글쓰기는 예술이 아니라 그저 기술이라며 편견을 버리면 누구나 좋을 글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루에 문장 한 줄 쓰지 않으면서 작문 이론을 배우거나 책을 읽는 일로 글쓰기 훈련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고자 부단히 써야함을 호통 친다.

저자는 글에 정수가 정확성에 있다고 말한다. 좋은 글은 정확해야 하고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추리고, 정돈하고, 매만져 정확한 언어로 밝혀 적는다면 글쓰기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정확하게 쓸 수 없을 만큼 정확한 문장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보통 사람도 글 한번 써보자

‘맛있다’보다는 ‘달다, 시다, 짜다, 쓰다, 맵다’가 낫고, 그보다는 ‘달콤하다, 새콤하다, 짭쪼름하다, 쌉싸름하다, 매콤하다’가 낫다. 백 보 양보해도 ‘맛있다’는 ‘마시쩡’만 못하다. 두루뭉술하고 관념적이다. 혀의 감각과는 무관하다. 판단이며 생각이다. (...) 글쓰기는 ‘맛있다’를 지우고, 어떤 맛이 나는가를 적는 것부터 시작한다.
-본문 중에서

글쓰기는 ‘맛있다’를 지우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 ‘맛있다’는 ‘마시쩡’만 못하고 ‘재미있다’와 ‘좋다’ 또한 죽은 말이자 쓸데없는 단어라 단언하는 파격으로 시작하는 책, 『보통 사람의 글쓰기』
‘보통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저자의 당찬 패기와 ‘보통 사람’ 답지 않은 전문성이 엿보인다.

수많은 글쓰기 책이 범람하는 와중에 보통 사람을 위한 글쓰기라니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보통 사람을 위한 책임이 분명하다. 책을 읽으며 그 자리에서 글의 전반을 더 아름답게 고쳐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도 울고 갈 전문성을 지녔다.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책이기도 한 이유다. 비판과 조언, 안타까움과 부탁, 진지와 유머, 도전과 자학이 뒤섞여 있다. 타협만 없다.

아름다운 글쓰기의 원칙
정확히! 구체적으로! 짧게!

저자가 추구하는 보통 사람의 글쓰기란 아름다운 글쓰기다. 아름답기 위해선 몇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킬 필요가 있다. 정확해야 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가급적 짧아야 한다. 더 이상 정확하게 쓸 수 없을 만큼 정확한 문장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말하는 저자는, 플로베르와 모파상의 말을 빌려 정확한 글의 아름다움을 주장한다.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밖에는 없다’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들을 지우고 구체적인 심상을 적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적고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묘사는 글쓰기의 기초이며, 정확한 언어로 생각을 적는 글쓰기 자체가 곧 묘사이다. 구체적으로 글을 쓰려면 쪼개고, 부수고, 나눠라. 보통 사람도 글 한번 써보려면 묘사부터 익히자.

글은 짧을수록 좋다. 쓸데없는 말을 덜어내고 군더더기를 걷어내라. 글을 난삽하게 하는 부사어와 관형어, 문장을 망가뜨리고 무너뜨리는 최상급과 복수 표현, 고루하고 낡은 표현인 ‘-의’ ‘-적’, 한심하기 짝이 없는 피동과 이중 피동 등은 모조리 피해야 한다.

잘 쓴 문장의 대표는 신형철 평론가와 이동진 평론가의 문장이다. 저자는 이들의 글을 ‘현란하다’거나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평하는 이는 문장의 정수를 모르는 사람이라 단정하며, 미문과 명확한 문장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말한다. 잘 쓴 문장은 아름다우면서도 명확하다. 또한 정확하고 구체적이고 짧다.

보통 사람이 알려주는
보통 사람의 글쓰기 전략

저자는 한 단어, 한 문장, 한 글을 쓰기 위해 두꺼운 사전 안의 수십 만 단어를 뒤지는 보통 사람이다. 그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은 글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한없이 고민하라는 것뿐이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최대한 가깝게, 최대한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결국 성실하게 쓰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글은 그저 쓴다고 쓰이는 게 아니다. 물론 수많은 글쓰기 전략이 있어 따라하면 되겠지만, 거기엔 영혼이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글의 영혼 유무는 평소에 관찰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저자는 ‘당신의 글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다가가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재미있는’ ‘흥미로운’ ‘낭만적인’ 따위의 말들로 생각이나 느낌을 부어 넣는 게 아니라, 재미있게 그리고 흥미롭게 전달하며 낭만적으로 묘사해야 하는 것이다.

글의 시작과 끝은 중요하다. 글의 시작은 개요일 것이다. 글짓기는 집 한 채를 짓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요대로 써지는 글이란 여간해선 없다. 일반적인 글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구상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구상을 끝냈다면 개요는 불필요하다. 누구도 개요만으로 글을 평가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반면 마지막은 어떤가. 글의 마지막은 퇴고일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유명한 말 ‘모든 초고는 걸레다’를 굳이 빌리지 않아도 퇴고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애당초 완성한 글, 완벽한 글이란 없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끊임없이 퇴고해야 한다는 걸 절대 잊지 말자. 하지만 퇴고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을 때가 있을 거다. 가령 시험을 볼 때. 저자는 퇴고한 글을 가지고 가라고 한다. 그것 역시 글쓰기 전략이다.

교실 밖의 글쓰기, 상식 밖의 글쓰기

교실에선 상식을 가르친다. 상식은 보통 사람이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할 지식을 가리키는데 절대적이기 쉽다. ‘올바르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교실 밖의 이야기, 상식 밖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교실에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 가르쳐줄 수 없는 게 있기 마련이다.

‘말하듯 쓰자’가 문장론의 원칙처럼 되어 있다. 이 구호는 말과 글이 너무나 달랐던 한 세기 전에 생겨났기에 말과 글이 너무나 같아 고민인 지금 세대가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말은 말이고, 글은 글이다. 우리가 할 일은 말을 ‘말답게’ 하고, 글을 ‘글답게’ 쓰는 일이다. 명심하자.

글쓰기를 예술로 아는 경우가 다분하다. 글쓰기를 멀리하고 멀리할 수밖에 없게 되기 일쑤다. 저자는 글쓰기가 기술이라고 단언한다. 그저 한 단어를 적고, 사전을 검색하고, 보다 정확한 말이 없는지 찾아보고, 고치고, 읽고, 다시 단어를 찾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노동인 것이다. 여기에는 재능이 아니라 성실함이 필요하다.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글쓰기 훈련에는 오로지 글쓰기만 있을 뿐이다. 하루에 문장 한 줄 쓰지 않으면서 작문 이론을 배우거나 책을 읽는 걸로 글쓰기 훈련을 했다고 하는데, 완전한 착각이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은 간접적이고 암시적이다. 직접적으로 글쓰기를 훈련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정한 양을 정기적으로 쓰는 거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 엄밀히 말해서 글쓰기 훈련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영감을 얻어 글쓰기에 매진할 때 비로소 훈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지은이/그린이 소개

이준기
1988년 여름 인천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여름부터 《중대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2015년 봄까지 글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는 『다시 읽는 백석 시』(공저)가 있다.

박준이
1994년 출생. 그림 재주를 물려받았으나 애써 부정하며 중앙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러스트나 캘리그래피를 부탁 받는 경우가 잦다. 《중대신문》에서 2년 간 학생 기자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 차례

1부 글쓰기의 원칙
구체적으로 적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라
서술어를 짧게 써라
정확해야 아름답다
간소하게, 부디 간소하게
중복을 피하라
쉽게 쓰자
문장부호를 적절하게 쓰자
수사법은 삶의 원리다

2부 글쓰기의 거의 모든 것
정확하게 쓰면 저절로 아름다워진다
단어에도 등급이 있다
언어는 세계를 완벽히 재현할 수 없다
끝내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가’와 ‘은/는’
영혼 없는 언어들이 종이 위를 떠돈다
글쓰기 시험 속성 준비법
흐느껴 우는 눈물이 더 짜다
‘사기템’ 교수와 ‘ㄴㅈ ㅇㅈ’
관용구는...
단호함은 글쓰기의 미덕이다
타오르는 말과 차오르는 말
접속부사 이야기
배치에 유의하라
알쏭달쏭 띄어쓰기
따져보지 않고 쓰면 우스워지는 말들
개요는 낭비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마무리다운 마무리
모든 초고는 걸레다

3부 글로 배우는 글쓰기
그녀, 슬픔의 식민지 / 신형철
윤진숙, 당신은 나의 스승입니다 / 서민
이런 ‘겸손한 제안’ / 김선주

4부 상식 밖의 글쓰기

글을 마치며 종이 위에 올라타기


□ 책 속으로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지만 누군가 꼭 알려달라고 부탁한다면 플로베르와 모파상의 말을 인용하련다. 좋은 글은 아름답기 이전에 정확해야 한다.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추리고, 정돈하고, 매만져 정확한 언어로 밝혀 적는다면 글쓰기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정확하게 쓸 수 없을 만큼 정확한 문장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 ‘1부 글쓰기의 원칙’ 중에서

작가는 독자와 동행해야 한다. 턱을 괴고 졸고 있는 독자들을 일으켜 세워 팔짱을 끼고 걸어야 한다. ‘재미있는’, ‘흥미로운’, ‘낭만적인’ 따위의 말들로 생각이나 느낌을 부어 넣는 건 작가들의 방식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재미있게 그리고, 흥미롭게 전달하며,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주관적인 말들로 독자들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생각하고 느낀 대로, 생각하고 느끼도록 묘사하자. 글은 ‘몸으로 말해요’가 아니라 ‘이인삼각 달리기’다. 어설프게 설명하지 말고 그저 같이 걷고, 함께 뛰어라.
- ‘2부 글쓰기의 거의 모든 것’ 중에서

글을 일정한 구조대로 써야 한다면 개요는 얼마만큼 유의미할까. 애초에 서론·본론·결론, 두괄식, 주지-부연-상술-예증 방식대로 글을 쓸 학생들이 개요를 공들여 짜느라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누구도 스케치만으로 모나리자를 평가하지 않는 것처럼 누구도 개요만으로 글을 평가하진 않는다. ‘출제자의 의도 파악-제시문 분석-개요 작성-집필-퇴고’는 그저 권장 사항일 뿐이다. 개요 쓰기가 불필요하다면 곧바로 집필 단계로 들어가도 된다.
- ‘2부 글쓰기의 거의 모든 것’ 중에서

신형철의 글을 읽어 본 사람들은 그가 쓴 글이 아름답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글을 새김질해 보지 않은 평자들은 글에서 눈을 뗀 후에 현란하게 글을 쓰는 필자로 신형철을 기억한다. 장식적인 수사나 미사여구 하나 찾기 힘든데도 문장을 치장하고 꾸미는 데 일가견이 있는 평론가라고 말한다. 신형철은 정확한 단어를 적확한 자리에 쓸 줄 아는 평론가다. 200자 원고지 16매 분량을 인용하고 덧붙인 평가로는 박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 말은 문장가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다. ‘정확한 단어를 적확한 자리에’ 이 원칙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만 신형철처럼 쓸 수 있다.
- ‘3부 글로 배우는 글쓰기’ 중에서

글쓰기는 예술이 아니다. 그저 기술이다. 나무를 깎아 선반을 조립하는 것처럼 단어를 다듬어 문장을 엮는 행위다. “예술적 영감의 신 뮤즈가 여러분의 책상에 너울너울 날아들어 타자기나 컴퓨터에 마법의 가루를 뿌려주는 일은 결코 없다” 소설가 스티븐 킹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글은 재능이나 영감으로 쓰는 게 아니다. 그저 한 단어씩 쓰는 것이다. ‘마법의 가루’나 ‘뮤즈의 속삭임’은 대체로 허구다. 작가들은 한 단어를 적고, 사전을 검색하고, 보다 정확한 말이 없는지 찾아보고, 고치고, 읽고, 다시 단어를 찾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한 단어씩 쌓아 올리며 글을 쓴다. 이 무모하리만치 더디고 지난한 노동에는 재능이 아니라 성실함이 필요하다.
- ‘4부 상식 밖의 글쓰기’ 중에서

영화가 끝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우진보다 얼마나 변함없는 사람일까. 매일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치수의 신발을 신지만 어제와는 다른 허영된 꿈을 꾸고, 어제와는 다른 이상을 품고 사는 나는 늘 나로 살고 있는 걸까. 이 물음에 확신이 서지 않아, 나는 글을 쓰며 살기로 결심했다.
- ‘글을 마치며 종이 위에 올라타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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