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Asia Publishers
Home | E-mail | Editorial Room
English

 

05/24 2017 제21회 심훈...
06/10 2015 심훈문학상 (계...
05/27 2015 아시아 도서목...
04/30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
04/30 2014심훈문학상 공고


분류 단행본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평전』
| 통권 : 단행본 | | HIT : 224 | VOTE : 17 |
박태준 선생 5주기 맞아 ‘박태준 평전’ 16년 만에 완결판 출간
비리로 얼룩진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자긍심과 위안을 일깨우는 책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평전』
        
   ▢ 지은이 | 이대환
   ▢ 발행일 | 2016년 12월 1일
   ▢ 쪽수   | 1032쪽
   ▢ 판형   | 138×213mm
   ▢ 값     | 32,000원
   ▢ 분야   | 문학 > 평전
   ▢ ISBN  | 979-11-5662-293-2 (03810)
   ▢ 담당   | 김형욱
   (02-821-5055/bookasia@hanmail.net)


□ 책 소개

무사심 일류국가주의·무소유 대기업가정신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완결판 『박태준 평전』은 그 길이고 그 실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박태준의 마지막 계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12월 13일,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이 영면에 든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그때 그의 부음은 세대와 이념을 넘어선 범사회적 추모의 행렬을 이루게 했다. 『박태준 평전-세계 최고의 철강인』은 우리 시대와 후세가 길이 공유해야 할 공적 자산인 그의 무사심 일류국가주의와 무소유 대기업가정신을 파란만장한 20세기 한국사의 거울에 비춰보며 그 가치를 평가하고 그 의의를 되새긴다. 저자 이대환 소설가가 처음 집필을 시작한 후 16년 만에 주인공의 서거 5주기를 맞아 장정을 완주했다.

한국 산업화의 성공을 이끌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 철강신화를 이뤄낸 박태준. 그럼에도 그는 집 한 채 남기지 않은 청렴의 리더였다. 1997년 초여름 주인공과 처음 인연을 맺어 그가 타계한 날까지 고인과 “숱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의 생애와 사상과 추억에 대한 온갖 대화”를 나누었던 이대환 작가는 박태준이 일으킨 기적의 정신을, 신화의 장면들을 또렷하게 보여준 뒤 주인공과의 기나긴 대화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작가로서 내가 지켜본 박태준의 최고 매력은 무엇인가? 지장, 덕장, 용장의 리더십을 두루 갖춘 그의 탁월한 능력인가? 흔히들 그것을 꼽는다. 나도 흔쾌히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최고 매력으로 꼽진 않는다. 내 시선이 포착한 박태준의 최고 매력은 ‘정신적 가치’를 가치의 최상에 두는 삶의 태도였다. 주인공보다 꼬박 한 세대 아래인 나는 그의 일흔 살에 그와 결연을 했다. 이 인연을 내가 존중 하고 따르며 가꾸는 길은 무엇인가?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꿰뚫은 그의 생애를 문학과 예술과 연구의 방법론으로 당대의 거울에 비춰보면서 무형의 사회적 자산으로 길이 후세에 남기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존연(尊緣)이요 ‘몸에 지녀서 따르는’ 최상 수연(隨緣)이다. 나는 작가니까.”

박태준을 향한 찬사들은 그가 단지 성공한 기업인이기만 했다면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무(無)에서 출발한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초일류 대기업으로 만들고 그 회장을 지냈으면서도 공로주로든 무엇으로든 주식을 한 주도 받지 않았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포스코나 포스텍 등과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까지 그를 추모하고 지금도 서울 현충원의 유택을 참배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비리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박태준이 진정으로 시대의 귀감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04년 12월 이대환 작가가 쓴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이라는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외국에서 나오는 수작(秀作)의 전기에 비견할 만한 작품이 나왔다” “문장, 통찰, 감동의 삼박자를 두루 갖춘 책이다” “실로 ‘나는 나라를 사랑했고, 나라에 나를 바쳤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인물의 평전이다” “‘왜 오늘 다시 박태준인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던져주는 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국의 대표적 평전문학이 되었다.

그로부터 12년이 더 흐른 뒤 한국 사회가 대통령 탄핵정국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혼란과 위기 속에서 시민의 힘으로 그것을 의연히 극복해 나가는 가운데 ‘박태준 5주기’를 맞아 새로운 장정으로 다시 나온 『박태준 평전』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박태준의 마지막 계절>을 비롯해 2004년 여름부터 그의 타계까지 ‘황혼의 30여 계절’을 증보하고 기존 평전의 군데군데를 보완하면서 문장도 더 손질한 것이다. 증보와 보완은 2004년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진 주인공과 저자의 대화, 저자의 주변인물에 대한 추가 인터뷰를 통해 이뤄지게 되었다. 또한 책머리에 놓은 작가의 에세이 <내 영혼에 남은 거장(巨匠) 박태준>에서는 주인공과 저자의 각별한 인연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책의 부피는 기존 856쪽에서 1032쪽으로 불어났다.  





□ 출판사 서평

‘왜 오늘 다시 박태준인가?’
우리의 영혼으로 박태준을 기억하다

“종합제철 성공과 제철보국, 이것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의미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순교자적으로 희생하는 세대다.”
“포항공대는 천하위공의 국가백년대계고, 과학기술은 국부의 원천이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화합은 시대정신이다.”
_박태준 어록에서

인류 문명이 철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해왔듯이 청암 박태준이 걸어온 길은 한국 경제 성장의 역사에 맞닿아 있다. 포항제철 설립과 발전의 역사는 국가정책 결정자, 기업 경영자, 그리고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중요한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하였다. 청암 박태준은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흐트러짐 없이 필생을 완주하는 동안 시대의 새 지평을 개척했다. 그러나 공적의 크기로만 기억하는 것은 참다운 의미가 없다. 박태준의 위업에 내재된 정신을 기억하고 무형의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2016년 12월 13일 5주기를 맞이한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후세의 영혼에 남아야 하는 박태준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왜 오늘 다시 박태준인가?’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 숙고에는 시대적, 국가적 지점 그리고 작가적 지점이 있다.

시대적 지점
-경제발전사의 큰 산맥을 이룬 인물의 역사적 공적과 천하위공의 실천적 정신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국가주의 방식의 압축적 성장까지. 이는 20세기 후반기 한국산업화의 시발과 종점을 가리킨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수난을 극복해나간 형극의 길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두 발이 경제와 민주주의를 밟고 서 있는 것이다. 지나간 격동의 시대는 그 한복판을 꿰뚫는 여러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고, 작가의 시선이 어느 특정한 인생에 오래 머물러 당대의 초상과 같은 전기문학을 제출했다. 대다수가 저항운동사의 산맥을 형성해온 인물의 기록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한국사회는, 오랜 세월을 ‘저항’이 인간의 이름을 아름답게 빛내는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빈곤이 민중을 몸서리치게 억압했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서 경제발전사의 산맥을 형성해온 인물들의 역사적 공적이 돋보이게 된다. 그들의 인생도 더러는 기록으로 제출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산업을 일으키는 현장에서 혼신의 열정을 기울인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역사기술에도 그러고 있지만, 단행본 기록으로서의 대접도 소홀한 편이었다. 마치 건설의 부실공사처럼 엉성한 날림공사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공백은 우리 시대와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당하고 공정하게 메워져야 하며, 그렇게 그 공백을 메워줄 대표적 인물이 바로 박태준이다. 그의 공적을 뒷받침하는 정신과 실천의 근원이 ‘천하위공’이었고, 그의 천하위공은 무사심 애국주의와 일류국가주의, 무소유 대기업가정신으로 실현되었다. 포스코는 제철보국 정신의 위대한 실현, 포스텍과 포스코의 학교들은 교육보국 정신의 훌륭한 실현인 동시에 일류국가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무사심애국주의의 실천이었으며, 오직 포스코를 국가경제와 국민행복의 뿌리로 생각하며 공로주로든 뭐로든 포스코의 주식을 단 한 주도 받지 않은 것은 무소유 대기업가정신의 실천이었다. 이러한 박태준의 정신과 실천은 각종 비리로 얼룩진 오늘의 한국 사회가 목마르게 갈구하는 ‘천하위공의 진정한 롤모델’이다. 이것이 박태준 평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의 하나이며 ‘왜 오늘 다시 박태준인가’의 시대적 지점이다.

국가적 지점
-‘경제와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길을 제시하다

박태준은 식민지와 전쟁, 빈곤과 부패의 시대를 관통하면서 당대의 변혁에 대한 신념을 확립했다.  그는 그의 방식으로 빈곤과 부패에 저항했다. 사람다운 삶이 보장되는 공동체를 설계하고, 자기 영역의 전체를 세계 최고로 끌어올리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철(鐵)에 목숨을 걸었다. 그의 철은 곧 국가였다. 장장 25년에 걸친 도전, 마침내 한국경제의 튼튼한 기둥을 세우고 포철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철강인에 등극했다.

일흔 살에 이르러 그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화합’을 외치며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교체’에 앞장서서 김대중 정권의 출범에 기여하고, 이때 필생의 저력을 쏟아 국가부도 위기사태의 IMF관리체제를 극복하는 대업에 헌신했다. 20세기의 최후를 그는 다시 ‘국가’에 온몸을 던졌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한국 사학(私學)의 새 지평을 열고 복지제도의 모범을 만들었다.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에 대한 전형을 세웠다.

박태준의 자취와 신념체계에는 20세기 후반기의 한국사회가 투영되어 있다. 오늘도 한국 사회는 정치적 스캔들과 부패 스캔들로 어지럽기 짝이 없다. 세계가 주목하는 시민의 높은 품위에 비하면 정치는 여전히 족탈불급의 상황이다. 리더십도 실종된 상황이다. 경제는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서민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사심 없는 리더십, 비전 리더십, 통합 리더십을 갈구한다. 오른발이나 왼발의 어느 한쪽 발로 서서 과거를 일방통행으로 재단하면서 사욕의 계산에 골몰하는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에게는 도무지 그것을 기대할 수 없다.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박태준의 소중한 진면목은 ‘경제와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길을 제시하는 장면에서도 유감없이 발현되고 무사심·비전·통합의 리더십을 실체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히 그것은 희망의 미래로 뻗어나간다. 이것이 ‘왜 오늘 다시 박태준인가’의 국가적 지점이다.

작가적 지점
-주인공 박태준과 저자 이대환의 남다른 인연

저자는 말한다. “내가 중학생 때 읽은 앤드루 카네기의 일대기는, 철강산업으로 어마어마하게 돈 벌어 늘그막에 좋은 일 많이 한 ‘위대한 철강황제’로 찍혔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인의 이미지로 남았다. 소년 시절의 나에겐 미국이 카네기와 같았다. 그로부터 거의 한 세대가 지난 다음에야, 머나먼 저곳 피츠버그의 카네기와 내 고향의 박태준을 나란히 세웠다. 두 인물의 키와 몸무게, 삶의 질을 견줘보았다. 어느 면으로 재고 따져도 덩치 큰 백인은 키 작은 한국인에 훨씬 못 미쳤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쓴 한국인으로서의 출발지점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주인공과 내가 남달리 깊은 인연을 맺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철강신화의 주역 박태준, 1968년 포항제철이 들어설 때 초등 4학년으로 고향마을에서 밀려났던 소설가 이대환. 이렇게 묘하게 엇갈린 주인공과 저자가 뒷날에 남달리 깊은 인연을 맺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책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1997년부터 15년에 걸쳐 숱한 시간을 주인공과 대화한 저자다. 그것이 어느새 저자를 기록의 자리로 이끌었다. 전기 집필에 흔히 따르는 ‘계약’은 서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있지도 않았다. 어떤 대화에서든 주인공은 더듬거리거나 피해간 적이 없었다. 기억력도 놀라웠다. 가령, 50년도 더 지난 군대시절의 특별한 체험담을 확인하기 위해 저자가 장교 연표나 관련 기록물을 찾아 대조해봤을 때, 최소한 월(月)까지는 일치했다. 저자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예컨대 5·16 뒤에 반대편 장성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자고 건의했다는 회고에 대해서도 케케묵은 시사 잡지를 뒤적여 기어이 확인하고 말았다. 저자의 믿음을 독자의 믿음으로 넘겨주려는 노력이었다. 거의 모든 대화는 저자의 상상력이 만든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기억력, 증언한 이의 기억력에서 잠을 깨고 나왔다. 물론 기록에서 불러낸 것도 있다.

작가는 오랜 세월을 바친 긴 글을 마치며 두 가지를 털어놓는다.
“모든 우거진 숲에는 못생긴 나무와 죽은 나무도 몇 그루 섞여 있기 마련이다. 만약 어떤 인생의 숲에 그마저 없다면, 그는 이미 인간의 경지를 초월하여 신의 경지를 살아간 사람이다. 모든 위인만 아니라 모든 성인도 그의 인생의 숲에는 반드시 못생긴 나무와 죽은 나무가 섞여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숲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숲 속의 못생긴 나무 한 그루에만 딱 초점을 맞춰서 그게 숲의 진면목이라고 우긴다면, 그것은 그렇게 고집하는 눈의 어처구니없고 더할 나위 없는 위선이다.”
“내 시선이 포착한 박태준의 최고 매력은 정신적 가치를 가치의 최상에 두는 삶의 태도였다. 주인공보다 꼬박 한 세대 아래인 나는 그의 일흔 살에 그와 결연(結緣)을 했다. 이 인연을 내가 존중하고 따르며 가꾸는 길은 무엇인가?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꿰뚫은 그의 생애를 문학고 예술과 연구의 방법론으로 당대의 거울에 비춰보면서 무형의 사회적 자산으로 후세에 남기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존연(尊緣이)요 최상 수연(隨緣)이다. 나는 작가니까.”
이것이 ‘왜 오늘 다시 박태준인가’의 작가적 지점이다.


□ 지은이 소개

지은이 이대환
영일만 어링불, 웅대한 포항제철소가 들어서며 가뭇없이 지워버린 모래밭. 그곳에서 1958년에 태어나 열한 살까지 자라난 이대환은 파도 소리, 종달새 노래와 더불어 삶의 실핏줄을 짰다. 고달픈 영혼의 여정에 나선 때는 포항고교 1학년, 어느 날부터인가 방황의 언어들은 그의 내면에 무지개로 걸리고…. 1980년(22세) 국제PEN클럽 한국본부가 주관한 장편소설 현상 공모에 당선되지만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나 귀향한 그는 지역운동을 꾸려나가는 가운데 ‘생물적 존재, 사회적 존재, 정치적 존재, 영성적 존재가 하나로 뒤엉킨 존재가 인간 개체’라는 믿음으로 문학의 홍역을 감당했다.
1989년 《현대문학》 지령 400호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다시 소설쓰기에 삶의 중심을 놓았던 그의 저서에는 소설집 『조그만 깃발 하나』 『생선창자 속으로 들어간 詩』, 장편소설 『말뚝이의 그림자』 『새벽, 동틀 녘』 『겨울의 집』 『슬로우 불릿』 『붉은 고래』 『큰돈과 콘돔』, 산문집 『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무지개』,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2004, 현암사) 등이 있다. 현재 계간문학지 《ASIA》 발행인을 맡고 있다.


□ 차례

작가의 말 | 내 영혼에 남은 거장(巨匠) 박태준
프롤로그
식민지 아이, 지배자의 땅에 서다 1927~1945
사선을 넘나드는 청년장교 1945~195
부패의 늪을 건너며 1953~1961
경영수업 1961~1965
황무지의 개척자 1965~1969
우향우의 기적 1969~1973
신화의 완성 1973~1979
울타리 되어 광양만 가기 1979~1981
바다에 그리는 꿈의 설계도 1981~1985
한국 사학의 새 지평을 열다 1970~1985
영광의 계절들 1986~1989
철의 용상에 하루만 앉다 1990~1992
4시간 담판, 유랑의 4년으로 1992~1997
‘겡제’는 가라, ‘경제’가 왔다 1997~1998
‘정축국치’를 넘은 뒤 1998~2000
에필로그 2001~2011
왜 나는 박태준 평전을 쓰는가
박태준 연보
참고문헌


□ 책 속으로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은, 회사의 종자돈이 조상들의 피의 대가였다는 사실입니다. 대일청구권자금, 그 식민지 배상금의 일부로써 포철 1기 건설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외친 제철보국과 우향우는 한층 더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영혼을 울렸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포스코에 요구되는 고도의 윤리의식이 나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철소가 있어야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그분의 일념과 기획과 의지에 의해 포항제철이 탄생했고, 그분은 저를 믿고 완전히 맡겼을 뿐만 아니라, 온갖 정치적 외풍을 막아주는 울타리 역할도 해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간직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현장에는 위험이 상존했고,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조업과 건설 중에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은 우리의 마음과 포스코의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직원 여러분,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 속에, 조국의 현대사 속에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것을 우리 인생의 자부심과 긍지로 간직합시다. 포스코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박태준의 생애 마지막 연설’(2011년 9월 19일) 중에서

2011년 11월 8일 이른 오후, 박태준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본관에 들어섰다. 그의 걸음걸이는 평소처럼 곧은 자세였다. 그러나 그것은 사생결단의 시간을 향하여 걸어가는 걸음이었다. 이튿날 수술을 전제로 하는 여러 가지 검사가 선행되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의료진과 편안히 대화를 나누었다. 십여 년 전, 2001년 여름의 뉴욕 대수술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속으로 그는 생각했다. 그때보다 나이는 열 살을 더 먹었지만 그때나 이번에나 그게 그거지 뭐. 그의 몸은 수술을 할 수 있는 완벽한 데이터를 보여주었다. 그놈의 기침, 그것을 일으키는 왼쪽 폐만 아니라면 다른 건강상태는 까딱없다는 뜻이었다.
입원 나흘째인 11월 11일 아침, 박태준은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며 문득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이게 세 번째지. 그래, 세 번째구나. 메스가 그의 몸을 가르는 것이 세 번째라는 회고였다. 첫 번째는 저 1950년 혹한의 흥남 야전병원에서 마취도 없이 몸을 맡겨야 했던 맹장수술, 두 번째는 뉴욕의 대수술, 그리고 이번.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동식 침대에 누워 입원실에서 수술실까지 이동하는 물리적 시간은 아주 짧았다. 그러나 환자와 가족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긴 시간인가. 만감이 교차한 그 끝에 영원한 작별의 순간이 어른어른 그려지기도 하는 시간, 그럼에도 마치 나쁜 징조를 물리치려는 것처럼 누구 하나 의연한 자세를 한 치도 흩트릴 수 없는 시간.
장장 9시간 28분이나 걸린 대수술. 환자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집도의와 주치의가 가족들을 상담실로 불렀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집도의가 낭보를 알렸다. 가족들은 감사의 한숨을 돌렸다. 그가 뻣뻣해진 손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했다. 왼쪽 폐 전체와 흉막 전체를 적출했다, 십 년 전에 물혹을 적출한 그 자리에 다시 혹이 자라고 있었다……. ‘흉막-전폐 절제수술’은 긍정적 예측을 불러오는 쪽으로 일단락되었다.
11월 12일 새벽 1시 30분. 집에 돌아와 깜빡 눈을 붙이고 있던 신형구 비서가 휴대폰을 받고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었다. 회장님께서 찾으신다는 중환자실 간호사의 연락이었다. 차를 몰아 달리는 30분 동안 젊은 비서의 가슴은 내내 쿵쾅거리고 있었다. 혹시 긴급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이 불안감과 초조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새벽 2시의 중환자실은 괴괴했다. 밤 11시에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고 가족 면회가 이뤄진 다음이어서 오랜만에 창업 회장과 젊은 비서, 단 둘만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젊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자네 왔나? 지금 몇 신가?”
환자의 목소리가 예상보다 맑게 들려서 비서는 불안한 긴장을 조금 풀었다.
“두 시입니다.”
“낮이야, 밤이야?”
“새벽 두 시입니다.”
긴 마취와 10시간에 육박한 수술이 시간의 혼돈을 초래했을 거라고 비서가 짐작하는 사이, 환자가 불쑥 강하게 물었다.
“유럽은 어떻게 되었나?”
비서는 깜짝 놀랐다. 죽음과 싸우는 상황에서도 세계와 국가의 문제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 그러나 비서는 얼른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스, 이탈리아에 이어 프랑스까지 영향이 미칠 것 같습니다.”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에 재정위기가 닥치는 상황에서 그것이 프랑스로 전염되면 신용경색에 빠진 프랑스 금융기관이 해외투자자금을 회수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위기가 전파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대한 간략한 보고였다.
“불란서가 이태리 국채를 많이 가지고 있지. 불란서나 독일까지 영향이 미치면 큰일이야. 유럽의 두 강대국마저 흔들리면 유럽 전체가 위험해져. 우리나라도 단단히 대비를 해야 돼.”
자나 깨나 나라 걱정이란 말이 있지만, 어느덧 그 말이 내포하고 있던 어떤 울림마저 다 말라버린 시대이지만, 이분은 정말 특별한 분이시구나. 당신이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자동으로 설정된 채널처럼 나라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통찰이 작동되는 분이시구나. 이래서 어른이시고 큰 분이시구나. 비서는 콧잔등이 시큼했다.
-‘박태준의 마지막 계절’ 중에서

만 21세. 박태준은 부모에게 하직하고 거의 출가하는 심정으로 머리를 깎았다. 조국 간성(干城)의 길로 고정한 청년의 나침반이 안내한 새로운 길의 첫 관문은 부산 국방경비대 정문이었다. 훌륭한 장교가 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품었다. 마침 시대적 조건은 갖추어져 있었다. 미군정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면서 한국군대의 장교 양성을 시급한 당면 과제로 삼아 남조선경비사관학교를 통해 꾸준히 ‘속성 장교’를 배출하고 있었다.
- ‘사선을 넘나드는 청년장교’ 중에서

그날 저녁이었다. 박태준의 숙소로 낯선 사내가 방문했다. 문제의 납품업자였다. 자꾸만 머리를 조아리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물의를 일으켜서 정말 죄송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자신도 억울한 피해자라고 했다. 듣다못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적반하장이란 말 정도는 알만한 놈이!”
“아닙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저도 중간상인한테 속은 겁니다. 물품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제 잘못이지만, 우리 업계의 관행상 서로 믿고 하기 때문에…….”
“야, 이 새끼야, 말로 할 때 썩 꺼져!”
그의 부리부리한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문득 납품업자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피었다.
“참모장님, 다 저의 잘못이라고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번에 참모장님이 저의 뒤를 봐주시면 저는 두고두고 참모장님의 뒤를 봐드리겠습니다. 이게 다 세상 이치 아닙니까? 절대로 후회하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매끄러운 하소연을 마친 사내의 오른손이 익숙하게 자신의 품으로 들어가더니 두툼한 봉투를 물고 나왔다. 박태준의 눈에서 팍팍 불꽃이 튀었다. 오른손이 권총을 잡았다.
“야, 이 새끼야! 그 더러운 돈 가지고 당장 꺼져! 쏘아 죽이기 전에 다시는 우리 부대 근처에 얼쩡거리지도 마!”
- ‘부패의 늪을 건너며’ 중에서

두 사람 관계의 제2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박정희의 명령에 가까운 제안을 박태준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마지못해 순종한다면, 두 사람의 미래는 ‘권력층의 통속적 역학관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그러한 길로 진입하느냐, ‘경제부흥의 창조적 역학관계’의 길로 진입하느냐. 박태준은 어느덧 갈림길에 서고 말았다. 선택권은 막 예편한 국군최고통수권자 앞에 앉은 현역 육군 준장의 의지에 맡겨졌다. 더구나 그것은 단순한 의지가 아니었다. 최고권력자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느냐 최고권력자에게 스스로 다가서느냐, 즉 자신의 미래 전체를 걸어야 하는 선택인 만큼 신념과 직결된 것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박태준은 짐짓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 ‘경영수업’ 중에서

박정희가 박태준을 종합제철추진위원장에 공식 임명한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물론 기본적으로는 종합제철 건설의 대임에 대한 책임이 ‘박정희에 의해 공식적으로 관료들의 어깨에서 박태준의 어깨로 넘어갔다’는 뜻이었는데, 또한 그것은 이제부터 KISA가 ‘KISA의 야박한 장삿속을 경멸하는 인물이자 철저한 완벽주의자이며 사심 없는 애국주의자인 박태준’과 본격적이고 전면적으로 상대하게 된다는 중요한 뜻을 담고 있었다.
- ‘황무지의 개척자’ 중에서

국가와 국민과 역사의 이름으로 도전하는 포항종합제철 건설. 겨울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황량한 모래벌판에 쇳물 빛깔을 닮은 제복차림의 사원들이 군인들처럼 오을 열을 맞춰서 열중쉬어 자세로 집합해 있었다. 그들 앞의 연단 위에 올라선 박태준은 속으로 헤아렸다. 입으로 하는 말은 잔소리에 그치면서 잊히기 쉽지만, 깊은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외침은 다른 존재의 내면에 안착한다는 것을.
“우리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입니다. 실패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고 우리 농민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합니다. 실패란 있을 수 없습니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죽어야 합니다. 기필코 제철소를 성공시켜 나라와 조상의 은혜에 보답합시다. 제철보국! 이제부터 이 말은 우리의 확고한 생활신조요, 인생철학이 되어야 합니다.”
- ‘우향우의 기적’ 중에서

현장 책임자들에겐 바쁜 하룻밤이 지나갔다. 석산 현장에서 폭약을 구해 오랴, 포항경찰서에 폭파신고 하고 허가 받으랴, 폭약 장전하랴, 폭파기사 대기시키랴.
이튿날이었다. 그림자가 짧은 한낮에 ‘이상한 기념식’이 마련되었다. 포철 안에 있는 모든 건설현장의 책임자와 간부, 외국인 기술 감독자, 그리고 포철의 임직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다는 나폴레옹의 말을 떠올린 박태준은 문득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며 미소를 머금었다. 포철의 사전에 부실공사는 없다. 진짜로 실현하려면 그런 거창한 말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80%나 진척된 공사를 다이너마이트로 완전히 날려버리는 ‘거창한 폭파식’이야말로 어떤 호소나 명령보다 훨씬 뛰어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더구나 영일만의 건설현장은 8년째 접어들어 기강이 좀 풀리거나 타성에 젖을 수 있는 시기였다.
“꽝! 꽝! 꽝!”
굉음이 터졌다. 예산과 시간과 노력이 한순간에 먼지로 사라진 찰나, 모여든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사라진 것들과는 견줄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 그들의 머리와 가슴에 남아야 했다.
‘포철의 사전에 부실공사는 없다.’
- ‘신화의 완성’ 중에서

국가적 비상시기에 조용하고 확고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포철 사장이 10월 28일 입법회의 제1경제위원장에 내정됐다. 박태준이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포철을 지키는 울타리가 된 날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스스로 인정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이‘ 정치인이 되겠다’는 의지와 욕망을 지녀야 했다. 그에게는 도무지 그게 없었다.
‘이제부터 제2제철 건설을 마칠 때까지는 내가 포철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정치의 장으로 한 발을 디디는 박태준의 가장 강렬한 목적의식이었다. 덤으로 다른 사명도 생겨났다. 경제인의 한 사람으로서, 개발시대의 현장을 헤쳐 나온 주역의 한 사람으로서 마이너스 성장으로 무너져 내리 는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것이었다.
- ‘울타리 되어 광양만 가기’ 중에서

박태준의 인재양성을 향한 웅대한 집념은‘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POSTECH)’를 탄생시킨다.‘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오늘을 극기하고,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의 지상 과제인 무한한 창의력을 계발하는 것도 교육이 짊어져야 할 역사적 소명’이라고 역설해온 그는, 바로 자신이 제시한 소명 의 길을 따라 순수한 자신의 의지대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 ‘한국 사학의 새 지평을 열다’ 중에서

……한국에 봉사하고 또 봉사하는 것, 그것이 귀하의 삶에는 끊임없는 지상명령이었습니다.
                                                       -미테랑 대통령의 축사 중에서

박태준은 눈두덩이 뜨끔했다. 식민지에서 풀려난 풋내기 청년이 건국시대의 조국으로 돌아와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의 좌우명을 따라 헌신해온 지 어느덧 45년, 그러나 여태껏 한국의 어느 누구도 그토록 가지런히 정돈된 언어로 그토록 진지하게 자신을 위로해준 사람은 없었는데……. 미테랑 대통령의 축사는, 철처럼 강하기도 하지만 종처럼 여리기도 한 그의 가슴에 한 잔의 감로수로 고였다. 영혼이 지칠 때마다 마실 수 있는, 영원히 마르지 않을 한 잔의 감로수…….
- ‘철의 용상에 하루만 앉다’ 중에서

‘겡제’는 가라, ‘경제’가 왔다! 박태준의 외침은 재미난 동요처럼 포항시내에 퍼져나갔다. 서울의 언론도 툭 튀게 다루었다. 그것은 포항시민이나 포항 보궐선거에 관심을 기울이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박태준이 왜 보궐선거에 출마했으며 현재의 지역적, 국가적 상황이 왜 그를 다시 부르는가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제공했다.
‘포철 신화의 주인공, 실물경제의 대가, 한국 산업화의 영웅, 세계의 철강황제’로 알려진 박태준의 거인 이미지는 자칫 평범한 시민들과 거리감을 형성할 수도 있었다. 이건 그의 인간적 면모를 왜곡시킬 수 있는 이미지이기도 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늙은 후보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부단한 악수공세와 거리유세로 ‘시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럴수록 ‘더위’가 그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에겐 영일만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 시절에 단련한 근육과 뼈가 있었고, 자신과의 투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는 강인한 자존심이 건재했다.
- ‘‘겡제’는 가라, ‘경제’가 왔다’ 중에서

20세기 후반기의 한국 산업화 무대에서 단연 빼어난 주연이었던 박태준. ‘영일만·광양만의 신화’를 창조하는 가운데 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에서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모든 방면의 모든 지도자를 통틀어 유일하게 세계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1997년 10월부터 2000년 4월까지 한국이 50년 만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달성하고 비참한 국가부도의 위기를 극복해낸 그 절박한 시기에, 그는 정치권력의 무대에서 과거의 순수한 열정과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김대중의 자문과 조연을 맡았다. 역사의 관습은 조연에 대한 대접과 평가가 지나치게 옹색하다. 관찰의 시각을 아주 좁혀서 오직 ‘세기말과 신세기의 벽두에 걸친 절체절명의 급박한 국가적 위기의 2년 6개월 무대’만 살펴볼 때, 박태준은 김대중 옆에서 어떤 자세로 어떤 공헌을 남겼을까?
박태준이 떠난 후 김대중은 건강에 대한 일반인의 우려를 넘어 ‘국민의 정부’를 완주했다. 역사적인 6·15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되었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현직 대통령의 영광을 축하하는 관제(官製) 현수막이 방방곡곡에 걸렸다. 그러나 그것은 대다수 국민의 가슴에는 걸리지 못했다. 불행히 통치권력의 핵심요직을 맡았던 그의 측근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줄줄이 구속되었다. 부패로 얼룩진 정권의 맥을 더 빼려는 것이었는지 평양의 김정일은 끝내 서울로 오지 않았다. 그 뒤, 북핵문제는 어렵게 꼬였다. 남북관계는 1972년 박정희-김일성의 ‘7·4남북공동성명’을 하나의 큰 기록으로 남긴 것처럼, 2000년 김대중-김정일의 그 비싼 ‘6·15선언’도 그런 전철을 따라 보낼 것인가?
정치권력의 무대에서 퇴장한 ‘세계 최고의 철강인’은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이제 자신의 건강을 되찾으려는 길고 고달픈 여정에 올랐다. 그의 체력과 의지가 이번엔 바로 자신의 황혼을 폐 밑 물혹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차례로 들어섰다.
- ‘‘정축국치’를 넘은 뒤’ 중에서

다산 정약용의 실체적 공적은 방대한 저술들이다. 그것들이 정약용 연구의 텍스트다. 청암 박태준이 20세기 한국사에 끼친 실체적 공적은 지대하다. 다만 저술들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저술들은 결국 언어의 체계이고, 언어의 체계는 정신이고 철학이고 사상이다. 박태준은 수많은 현장의 언어를 남겼다. ‘박태준 어록’을 국판 크기로 편집하면 일만 쪽을 넘길 것이다. 박태준 연구의 텍스트는 넉넉히 준비돼 있다. 포스코, 포스텍, 포스코의 학교들, 포스코청암재단, 한국 현대사에 끼친 지대한 공로 그리고 그의 방대한 어록…….
- ‘에필로그’ 중에서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GGAMBO
계간 '아시아'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100-16 3층 / 전화 02-821-5055 / 팩스 02-821-5057
Copyright (C) since 2006 Asia Publishers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