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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알아야 할, 우리도 몰랐던 고은의 진면목
| 통권 : 2017년 | | HIT : 5 | VOTE : 0 |
노벨상을 국가의 위상에 연계하려다보니,
오히려 고은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설적 상황
  
1958년 《현대시》에 「폐결핵」으로 등단한 이래 시력 60년을 앞둔 시인 고은, 2002년부터 15년간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에게도, 대한민국 전체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노벨상이 갖는 영향력과 파괴력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연계하려다보니, 오히려 고은 시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설적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고은은 노벨상 수상과 관련 없이 파란만장한 삶, 놀라운 시적 영혼을 지닌 대한민국 대표 시인이자 아시아의 긍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고은을 잘 모른다. 노벨상 후보들을 보도하는 외국 언론의 ‘정작 한국 독자들이 고은을 잘 모른다’는 지적은 아프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천황폐하가 되고 싶었던 그가 왜 시인이 되었는가. 그가 왜 네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고, 그가 왜 출가하였고 다시 환속했는지, 그가 왜 순수시인에서 참여시인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그가 왜 한글을 ‘신’이라고 하는지, 그가 말하는 ‘시’는 무엇인지. 고은 스스로 밝히는, 우리가 몰랐던 고은의 깊은 이야기가 『고은 깊은 곳』에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담겨 있다. ‘고은’이라는 사람의 가치와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다.  
고은은 왜?
  
고은은 왜 초등학교에서 퇴학당했는가:
“천황폐하가 되겠습니다.”
  
교장의 불벼락이 떨어졌네. “네놈은 당장 퇴학이다” 하고 나를 쫓아냈어. 나는 엉엉 울면서 책보를 싸 어깨에 메고 논길을 걸어 집으로 쫓겨 갔네. (『고은 깊은 곳』 36쪽)
  
고은은 왜 출가하였는가:
“불교는 내가 선택한 기억이 없네.”
  
고향의 전후, 그 참혹한 학살을 경험한 뒤의 자생된 허무 속에서 가출을 거듭하다가 길에서 우연히 편력승을 만나 그의 뒤를 따라감으로써 불교를 만난 것이야. (『고은 깊은 곳』 36쪽)
  
고은은 왜 네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는가:
“나는 동네 친구 김봉태를 잊을 수 없네. 그는 부유층 사회주의자의 아들이었다가 우익에 의해 생매장 당했네. 나는 그를 살려낼 힘이 없었어.”
  
6.25는 “죽음이 얼마나 삶을 모독하는가를 죽음이 얼마나 삶 따위를 가소롭게 하는가를 소년인 나는 아무런 정신이나 의식의 단련 없이 체험”하게 해주었다. 1953년 가을 이후 살아남은 자로서 허무가 나의 허무였음을 나는 뒤에 깨달았다. 한국전쟁의 참혹한 체험으로 잉태된 수많은 죽음과 주검의 악취는 고은의 심신 속에 깊이 감염되어 버렸다. 이후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사건이 그의 모든 걸 뒤흔들 때까지 죽음에의 유혹은 계속되었고 네 번의 자살시도를 하였다.
  
고은은 왜 순수시인에서 참여시인으로 변모하였는가:
“시대와 세상의 파동이 영혼의 해안에 닿아서 나를 움직였다!”
“이제 나는 출항한다. 뱃머리에 서 있으리라.”
  
1970년 11월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유혹은 오랫동안 들씌워진 장막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네 번의 감옥 몇 해와 많은 구금, 연금으로 이어지는 날들이었고, 24시간 밀착감시로 정보부 요원, 정보과 형사와 동행 동거해야 했다. 내가 갇힌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 방은 김재규가 머물렀던 방이고, 서대문 감옥은 도예종이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확정판결을 받고 다음날 새벽 교수형 당할 때까지 갇혀 있던 2사(舍) 상(上)의 7방이었다. 나의 고막은 고문으로 파열되어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심신은 망가지지 않고 모질게 살아남았다.
  
고은은 어떻게 한 학년 월반하게 되었는가:
“해방 직후 교실에서 한글을 아는 아이는 나밖에 없었지.”
  
“나는 나의 말이고 나의 글이네.”(20쪽)
“나에게는 이 한국어와 한글밖에 없네.”(153쪽)
  
고은에게 시, 시인이란 무엇인가:
시인이란 꿈의 적자이고 현실의 사생아다. ‘내 유골도 시를 쓸 것이네.’
  
“나에게서 시를 빼앗으면 나는 뱀 허물이고 거미줄에 걸린 죽은 풍뎅이 껍질이지.”(22쪽) 고은은 그리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시를 모를 때도 시를 지켜낼 것이네. 시의 시대가 올 것이네. 인류사의 종말에는 시만 남을 것이네.’ ‘이 세상 마지막에 시 몇 편 남겨도 될 것이네.’ ‘시는 내가 숨 쉬기 전에 먼저 나에게 온다네. 내 시의 체질은 이백 쪽이 분명하네. 이미 시 이전에 율이 만들어진다네. 내가 만들 겨를이 별로 없어.’
  
고은은 시의 미래를 걱정할까:
“시를 걱정하지 마라. 시보다는 인류가 먼저 소멸할 것이다.”
  
“삶과 죽음까지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시 아닌가?” 고은은 지난 9월 30일 명동 해치홀에서 열린 <주한 외국인과 함께하는 북 콘서트>에서 시의 미래에 대해서 묻는 외국인에게 이렇게 되물으며 “시가 인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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