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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판타지를 퍼뜨리는 게 아니라...[경향신문2008.06.02]
 Asia  | 2008·06·09 09:32 | HIT : 3,778 | VOTE : 847 |
[한국을 찾은 해외작가들](5)중국 반체제 소설가 옌롄커
  
ㆍ“中 자본주의 환상 붕괴 시작됐다”


“나는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문학은 판타지를 퍼뜨리는 게 아니라 현실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중국의 반체제 소설가인 옌롄커(閻連科·50)가 한국에 왔다.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경북 포항에서 ‘아시아, 소멸의 이야기에서 생성의 이야기로’(포스코청암재단 주최·계간 아시아 주관)란 주제로 열린 문학포럼에 초청됐다. 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주말에 도심에서 진행된 촛불시위를 목격한 뒤 “신선하고 부럽다. 한국은 민주화된 국가임이 확실하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옌롄커는 중국에서 금서가 된 뒤 세계 20여개국에 소개된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2004년)로 유명해졌다. 지난달 중순 국내에서도 출간(김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돼 재판을 찍은 이 책은 마오쩌둥이 만든 인민해방군의 경건한 슬로건을 정념에 빠진 사단장 아내와 취사병 사이의 은밀한 침실행 신호로 바꿔버림으로써 인간의 권리, 군대 비리, 나아가 문화 혁명을 비판했다.

그는 “이 소설이 그렇게 돌출된 위치를 차지한 것은 유감이자 큰 행운”이라면서 “이 소설은 어떤 형식의 사랑도 불가능했던 세태를 통해 중국인의 삶을 깊이 관통한 혁명의 제약과 압력을 풍자하려고 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남녀 주인공 사이의 정사 장면이 자칫 선정적으로만 비쳐지지 않을까 하는 데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옌롄커는 스무 살이던 1978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2005년까지 28년간 군인으로 살았다. 사병 시절부터 소설을 써온 그는 인민해방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 출신 군인들의 삶을 그린 ‘농가군가(農家軍歌)’라는 장르의 선두주자였으나 작가로서 그리 빛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 심한 요통으로 요양생활을 하면서 생명에 대해 각성하고 변화를 맞이했다.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흐르는 세월’(1998년), ‘물처럼 단단하게’(2002년), ‘즐거움’(2003년), ‘딩좡의 꿈’(2006년) 등을 이 시기에 썼다. 이중 ‘물처럼 단단하게’와 ‘딩좡의 꿈’은 올 하반기 중 국내 출판사인 물레와 아시아에서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작가는 특히 최근작인 ‘딩좡의 꿈’에 대해 애착을 드러냈다. 딩좡이란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을 사용해 주민들이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 작품은 “인성의 어두운 면, 특히 자본주의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붕괴된 처참한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이 소설은 홍콩 잡지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06 중국어로 쓰여진 10대 저작물’ 1위에 뽑히기도 했다.

그는 최근 쓰촨성 대지진이 가져온 참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진단을 내렸다. “경제발전이라는 망상 속에서 엉터리로 지어진 건축물들을 모두 살펴보고 과거를 통렬히 반성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할 당시 내걸었던 ‘돌을 더듬으며 강을 건넌다’는 슬로건 역시 방향성을 상실한 현대 중국의 상황에 비춰 청산돼야 할 시점”이라면서 “덩샤오핑은 선견지명을 가졌을지 몰라도 고삐를 잃은 중국 자본주의는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옌롄커는 “중국 창작 전통 가운데 하나는 사회에 부족한 점을 묘사하는 것인데 루쉰은 이런 전통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나도 이 계열에 서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공산당의 비판을 받거나 금서가 됐다. 90년대에는 군대에서 6개월간 자아검토서만 쓰면서 지낸 적도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창작과 출판을 엄격히 분리해 반체제 작품의 경우 출판·홍보·게재·비평·각색을 할 수 없는 5금(禁) 조항을 부분, 혹은 전면 적용하면서도 창작의 자유와 해외에서의 출판은 허용하고 있다. 옌롄커 역시 중국작가협회 일급작가로서 교수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다.

그는 고질병인 요통 때문에 한때는 특수제작한 장애인용 침대에 누워 하늘에 대고 글을 썼으며 좀 나아진 요즘도 책상에 똑바로 앉지 못해 비스듬히 누워서 허공에 매달린 원고지에 창작을 한다. 세계적인 중국문학 붐과 더불어 해외에서 초청이 답지하지만 “행사에 참석하는 건 친구를 사귀는 기회일 뿐 글 쓰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 대개 거절한다. 신작을 탈고한 기쁨으로 나선 이번 여행에서는 수려한 자연 풍광과 ‘물가에 사는 사람들’처럼 예의 바르고 깨끗한 한국인들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글 한윤정·사진 강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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