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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거리는 빛을 찾는 ‘취한 새’ [한겨레 06.09.22]
 Asia  | 2006·09·22 14:46 | HIT : 4,278 | VOTE : 933 |


소설가 오수연(42)씨는 문단에서 팔레스타인의 대변인으로 통한다. 그는 2003년 제2차 이라크전쟁이 한창일 때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파견작가 겸 국제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서 취재와 평화감시 활동을 펼쳤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현지 기록을 포함한 글들은 <아부 알리, 죽지 마>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오씨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만났던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56)를 두 차례 한국으로 초청해서 한국의 문인들과 만나도록 주선했다. 지금 그는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라는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꾸려 나가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인 아홉 사람의 산문집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오수연씨와 자카리아의 협업으로 태어났다. 자카리아가 현지의 동료 문인들을 독려해서 글을 쓰게 했고, 그 글들의 영어 번역본을 오씨가 직접 우리말로 옮겼다. 아랍어가 한국어로 바뀌기 위해 영어의 중개를 거쳐야 했지만, 책의 진정성과 호소력이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훼손되지는 않았다. 오씨는 옮긴이의 말에 “이 책은 가물거리는 희망을 위해 기획되었다(…)늘 그렇듯이 희망은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고 적었다.

자카리아 자신이 쓴 <취한 새>라는 글이 흥미롭다. 이 글에서 작가는 ‘목을 틀어 뒤를 바라보며 눈을 기다리는 새’에 관해 이야기한다. 팔레스타인 남쪽 지방에서 발견되는 옛 도자기들에 그려진 이 새 문양의 상징성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의 기이한 모습에서 자신을 비롯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현재를 본다.

“나도 이 새처럼 뒤를,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진실로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이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600만 난민들이 뒤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제 땅에 있던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잃어버린 천국을 그리워한다. 내게는 이 새가 그런 사람들의 상징으로 여겨진다.”(<취한 새>)

자카리아가 묘사하는 신화 속 새 ‘필리스트’의 형상은 역시 뒤를 돌아보는 포즈로 유명한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와 흡사하다. 그리고 이런 유사성은 발터 베냐민이 파울 클레의 그림에 대해 붙인 해석을 떠오르게 한다.


팔레스타인 대변인 오수연씨 옮겨

“이것이 바로 역사의 천사가 지니는 모습일 것이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의 현장에서 그는 파편 위에 계속 파편을 쌓아 올리며 그 더미를 그의 발치에 던져 놓는 단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들을 모아 다시 결합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는 계속 폭풍이 불어오고 있으며, 그 폭풍은 이미 천사의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 없도록 세차게 불어와 그의 날개를 향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그를 떠밀고 있으며, 한편 그의 앞에 쌓이는 파편의 더미는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이 폭풍이 바로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것이다.”(발터 베냐민 <역사철학테제>)

나치에 쫓기다 자살한 유대인 철학자의 말이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시인의 글에서 메아리치는 것은 아이러니한 감동을 준다. 자카리아가 베냐민의 글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글을 함께 읽으면,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탄압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서 고스란히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짙게 든다.

자카리아의 또 다른 글 <귀환>과 시인 모리드 바르구티의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는 이른바 ‘6일 전쟁’으로 불리는 1967년 전쟁 이후 30년 만에야 조국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지식인들의 회한과 분노를 묘사한다.

“25년이나 고국을 떠나 있었다면, 결코 그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그러나 2천 년이나 여기 없었으면서도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기억이 없으므로 그들은 거리낄 것도 없다.(…)그래서 그들은 뿌리째 뽑히는 나무를 봐도 화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릴 적에 그 밑에서 자곤 했던 나무가 보이지 않으면 슬프고 맥이 빠진다.”(<귀환>)

이스라엘의 탈법적 지배와 폭압 아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친구들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검문소를 통과하는 작가의 이야기인 <먼지>(아다니아 쉬불리), 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가담자들에 대한 혹독한 대접을 연상시키는 이스라엘 수사관들의 고문 실상이 드러나는 <심문>(아이샤 오디), “무기는 제1세계의 것을 갖고 있지만 정신상태는 이디 아민의 군대”와 같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도 라말라를 침공한 2002년 4월의 스무 날 남짓한 무렵을 현장에서 기록한 <도시에 밀어닥친 폭풍우: 침략에 대한 일지>(자밀 힐랄),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예루살렘 ‘여권’을 발급 받은 애완견을 차에 태우고 그 개의 운전사를 자처하면서 검문소를 통과하는 과정을 우스꽝스럽게 다룬 <개 같은 인생>(수아드 아미리), 아라파트의 장례식 풍경을 생생하게 그린 같은 작가의 <자식이 자라기를 바라지 않았던 아버지> 등의 글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가물거리는 빛”(<취한 새>)을 찾는 지난한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2천 년이나 여기 없었으면서도…



책 말미에는 홍미정 한국외국어대 중동역사 연구교수의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 팔레스타인 문제의 객관적 이해를 돕는다. 마지막으로, 근본주의적 저항세력인 하마스가 올 초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뒤 언론인 알리 제인이 쓴 글 <나를 너무 밀지 마>에 귀를 기울여 보자.

“하마스의 승리가 나는 전혀 기쁘지 않다. 세속적인 사람으로서 나는 내 자유가 굉장히 염려된다. 내가 어떻게 먹고, 입고, 무엇을 읽을지 참견하는 그 누구한테도 통치받고 싶지 않다. 나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나를 진정 화나게 하는 건, 전 세계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리 동포들을 벌주려고 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감수성 부족이 하마스가 더 많은 표를 얻도록 도왔다. 나는 두렵다. 만약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둔감하다면, 그들은 나 역시 밀어붙여 하마스 편에 서게 만들 터이므로.”(<나를 너무 밀지 마>)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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