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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녹아있는 필리핀의 역사적 고통… [세계일보2006.12.01]
 Asia  | 2006·12·04 01:28 | HIT : 4,118 | VOTE : 797 |
'ASIA' 겨울호 比국민작가 F.S. 호세 특집  

필리핀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가까운 동남아 휴양지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학을 통해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제3세계 일반의 지난한 공동운명을 금방 간파할 수 있다. 아시아인의 진정한 이해와 소통을 표방하는 계간지 ‘ASIA’ 겨울호는 필리핀 대표작가 F. S. 호세(82·사진)를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하며 아시아의 공통적인 내면을 반추하게 한다.
호세는 필리핀의 사회 현실에 대한 정치적 전망을 일관되게 견지해온 그 세대 작가 중 가장 탁월한 대표주자. 그는 스페인 미국 일본의 식민지배와 마르코스의 독재로 이어진 격동의 필리핀 현대사를 22년에 걸쳐 집필한 대작 ‘로살레서 사가’로 필리핀 국민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소설가 방현석씨가 필리핀으로 날아가 호세를 인터뷰한 글과 그의 단편 ‘불 위를 걷다’가 ‘ASIA’ 겨울호에 수록됐다.

호세는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지만 스페인 식민지배에 저항하다 사형당한 필리핀 작가 리잘에 영향을 받아 작가의 길에 들어선 뒤, 출판 금지와 연금의 혹독한 세월을 거쳐야 했다. 그는 방씨와의 대담에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유교적 봉건주의든, 최소한의 지배 이념과 윤리가 있어야 하는데 계엄령은 어떤 도덕적 윤리도 없었다”며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얼마나 취약하고 쉽게 독재로 돌변할 수 있는지 계엄령은 여실하게 보여주었다”고 술회했다.


1965년 잡지 ‘솔리다리다’를 창간해 필리핀 지식인 사회에 횃불을 밝혔지만 마르코스의 철권통치가 시작되면서 폐간할 수밖에 없었고, 1987년에야 복간해 4년 만에 달라진 시대 분위기 때문에 다시 접어야 했다. 가까운 과거의 한국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 호세의 단편 ‘불 위를 걷다’는 필리핀의 역사적 고통을 환상적인 기법으로 다루고 있다. 스페인 식민지배자들에 의해 불에 타 죽었던 사탕수수밭 농부들의 원혼이 떠도는 이 작품은 백 마디 말보다도 한 편의 문학작품이 한 국가와 사회의 내면에 흐르는 핏줄을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아시아의 영혼을 이어주는 중요한 작업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글과 영문을 병기하는 ‘ASIA’ 겨울호에는 이밖에도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작가들이 작금의 중동사태에 대해 직접 언급한 서남아시아 현지기획 ‘여기, 누가 전쟁을 원하는가’를 비롯해 일본 우경화를 강도 높게 비판해온 오에 겐자부로의 산문 “‘희구’(希求)라는 말”, 한국 신세대 작가 박민규와 우즈베키스탄의 알리세르 파이줄라예브의 소설들이 수록됐다.

조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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