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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승패 떠나 병사들 슬픔 주목” [한겨례뉴스 2012.05.14]
 ASIA    | 2012·05·14 11:43 | HIT : 2,666 | VOTE : 581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32651.html
‘전쟁의 슬픔’ 작가 바오닌
참전경험 소설로 최고작품상
전쟁취지 침묵해 판금되기도
“병사들 항미전사 아닌 패자”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 비판
“베트남전쟁을 다룬 이전의 소설들이 속임수와 미화로 점철되었다면, 전쟁 속의 사람들 이야기를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그린 게 제 소설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해 쓴 이전의 전쟁 소설들은 문학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단지 ‘사회주의적’인 글을 쓰지 않았을 뿐이에요.”
베트남전쟁을 다룬 소설 <전쟁의 슬픔>의 작가 바오닌(60)은 자유로우면서도 단호했다. <전쟁의 슬픔> 한국어판(하재홍 옮김, 아시아 펴냄) 출간에 맞추어 지난 10일 저녁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격식이나 의례에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6년에 걸친 참전 경험을 담은 <전쟁의 슬픔>에 대해서는 그 당위와 진실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전쟁의 슬픔>은 1991년 ‘사랑의 숙명’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어 이듬해 베트남작가협회가 주는 ‘최고 작품상’을 수상했으나 그 운명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주인공 끼엔과 그의 연인 프엉의 순결한 사랑이 전쟁에 찢기고 파괴되는 이야기를 중심에 놓은 이 소설이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싸워 승리를 거둔 ‘조국해방전쟁’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점 때문이었다. 작가가 원했던 제목 ‘전쟁의 슬픔’이 아닌 다른 제목으로 첫선을 보여야 했으며,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음에도 결국 1994년에는 판매 금지 조치를 당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1994년 영어 번역본이 나온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베트남 문학작품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16개 국어로 번역 출간되는 등의 성과를 등에 업고 마침내 2005년 해금되어 ‘사랑의 숙명’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가 이듬해 지금의 제목을 되찾았다.

“<전쟁의 슬픔>을 처음 쓸 때 베트남은 매우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전쟁의 승리에 들떠 있었습니다. 누구나 기뻐해야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전쟁이 초래한 슬픔과 불행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전쟁의 승패를 떠나 실제로 참전했던 병사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전쟁의 패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저를 포함한 그 병사들의 슬픔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전쟁의 슬픔> 한국어판(하재홍 옮김, 아시아펴냄)
실제로 <전쟁의 슬픔>에 묘사된 북베트남 병사들의 모습은 영광스러운 항미 전선에 나선 용맹스럽고 사명감 넘치는 전사의 면모와는 거리가 멀다. 두려움과 권태를 이기고자 환각 물질에 기대고, 전선의 엄혹한 상황에서 여자의 육체에 빠져드는가 하면, 급기야 탈영을 하는 병사도 나온다. 작가는 병사들이 온몸으로 겪는 전투 장면은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공식적으로’ 그 바탕을 이루는 조국해방전쟁의 취지와 이념에 대해서는 의도적이리만치 침묵을 지킨다. 대신, 주인공 끼엔을 위로하거나 반대로 고통에 빠뜨리는 것은 운명의 연인 프엉과 나눈 사랑의 추억과 이별의 아픔이다. 소설은 끼엔의 절망과 방황을 그리느라 시간 순서를 무시한 채 극적인 장면과 이미지들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옮겨 다닌다.
“누구라도 단 하루만 전쟁을 겪게 된다면, 그 순간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지금 베트남의 가장 나쁜 것들은 모두 전쟁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시절에는 전쟁이 끝나면 야만은 물러가고 세상이 나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바오닌은 “문학작품은 특정의 목적을 지녀서는 안 되며, 작가는 교육자도 정치 간부도 도덕학자도 아니다”라면서도 “한국의 독자들이 <전쟁의 슬픔>을 어떻게 읽건 그건 그들의 자유와 권리이지만, 적어도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무력에 의지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노이(베트남)/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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