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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들의 삶 통해 세기말 타이베이 풍경 기록 (경향신문 2013.04.21)
 ASIA    | 2013·05·07 10:09 | HIT : 2,876 | VOTE : 702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4212129125&code=960205
ㆍ대표작 ‘황인수기’ 한국 출간하는 대만 여성작가 주톈원

대만의 여성작가 주톈원(58)의 대표작 <황인수기>가 한국에서 출간(김태성 옮김·아시아)되는 데 맞춰 지난 20일 타이베이에서 그를 만났다. 주톈원은 소설가인 아버지와 일본문학 번역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창작활동을 시작해 <전설> <샤오비의 이야기> <세기말의 화려함> 등을 발표했으며 동생 주톈신과 더불어 자매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또 <비정성시> <연연풍진> 등 대만 뉴웨이브를 이끈 허우샤오셴 감독의 영화 20편 가운데 16편을 쓴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인터뷰 자리에는 주톈신과 허우샤오셴도 합석했다.

주톈원은 <황인수기>의 한국 출간에 대해 “문학 중 문학이고 어려운 책이다. 이런 책이 한국에서 번역된 이유를 알고 싶다”고 운을 뗐다. 그의 겸손과 달리 1994년 발표된 <황인수기>는 대만의 시보문학백만소설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일본어로 이미 번역됐다. 홍콩 잡지 ‘아주주간’이 꼽은 20세기 중국어 소설 100선에도 포함됐다. 황폐한 인간이란 뜻의 ‘황인(荒人)’은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기말 타이베이의 풍경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은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 동성애자들의 삶 통해 세기말 타이베이 풍경 기록
허우샤오셴 감독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

이 작품의 착상은 밀란 쿤데라가 소설 <불멸>에서 19세기 빈의 풍경을 서술한 대목에서 나왔다. ‘수치심과 수치심을 모르는 상태가 똑같은 세력으로 서로 대치하면서 교류하고 있다. 욕정의 처리가 이상할 정도로 긴장되어 있는 순간, 빈은 세기가 전환되는 시기에 이런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세기말 풍경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화려하면서 성애적인 그림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20세기 말 인간의 욕정이 고조된 가운데 ‘수치심을 아는 이들’은 동성애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자신의 성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황인수기>의 화자는 마흔 살의 대학 교수이자 동성애자로,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동성애자 아야오의 죽음을 맞아 지난날을 회고한다. 사춘기 시절 아야오와의 우연한 부딪침으로 자신의 동성애 기질을 발견한 화자는 무용수인 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용제 등 동성 연인과의 만남에서 무한한 기쁨과 절망을 동시에 느낀다. 동성애자는 결코 만족되지 않는 욕망을 좇아 부나방처럼 떠돌면서 자기주장과 세상의 모멸 어린 시선 사이에서 자아가 분열되는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적나라한 나의 몸으로 인간 세계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패륜적인 도덕의 밑바닥이 되고자 했”던 주인공은 “이 시대와 하나로 꽁꽁 묶여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작가는 “예술가 친구들 가운데 동성애자들이 있지만 막상 그들의 삶을 취재하는 데는 5~6년의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그중 한 사람은 주인공의 모델로, 깊은 속내까지 들려줬는데 지금은 캐나다에 살고 있다. 한국어판의 부제 ‘세상 끝에 선 남자’처럼 “세상 끝(알래스카 인근)으로 가버렸다”고 말했다. 철저한 취재와 그들의 삶에 대한 공감에 힘입어 <황인수기>는 동성애자의 내면을 놀라울 만큼 섬세하고 실감나게 그려냈다.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시·공간을 넘나들고 푸코, 레비 스트로스의 이론을 비롯해 동서고금의 신화·종교·철학을 끌어들여 읽기가 까다로운 ‘문학 중 문학’이면서도 문자의 힘만으로 황량함, 고독, 비애 등 인간의 온갖 쓰라린 감정을 전달한다.

주톈원의 소설은 허우샤오셴의 영화와도 많이 닮았다. <비정성시>의 벙어리 이발사 양차오웨이가 뿜어내는 고독의 아우라가 ‘황인’에게도 배어 있다. 작가보다 아홉 살 연상인 허우샤오셴은 “우리는 30년을 함께 일했다. 내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황인수기>를 통해서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과 나의 영화는 완벽하게 어울리는 두 개의 세계”라고 말했다. “내가 아이디어를 던지면 주톈원은 그것을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실체로 만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지금도 함께 작업한다. 중국 고전 <요재지이>에 나오는 당대 여성협객 ‘섭은랑(섭隱娘)’의 이야기를 찍고 있다.

동생 주톈신 역시 작가에게는 평생의 동반자다. 자매는 수필가인 막내 여동생까지 합심해 ‘삼삼집간’ ‘삼삼잡지’ 등을 발행하기도 했다. 주톈원의 작품이 여성적이라면, 주톈신의 소설은 선이 굵고 힘차다. 주톈신의 남편 역시 문학평론가로, 2대에 걸친 유명한 문학가족이다.

주톈원은 오는 25~27일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에 참석, 왕안이·츠쯔젠과 함께 ‘중국 여성문학’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그는 “역사와 전통으로부터 많은 소재를 취하는 대륙문학이 스토리텔링 위주라면, 대만문학은 내면심리에 치중한다. 그러나 대륙문학 역시 소재의 고갈로 인해 이제 대만의 경향 쪽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베이 | 글·사진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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