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아픔 담은 메도루마 소설집>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출간
일본 작가 메도루마 슈운(目取眞俊)의 소설은 일본 소설하면 흔히 떠올리는 가볍고 감각적인 소설들과는 사뭇 다르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메도루마는 전쟁의 쓰라린 상처를 안고 있는 고향 오키나와의 현실을 그린 무게감 있는 작품들로 주목 받고 있는 '오키나와 작가'다.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메도루마의 소설집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아시아 펴냄)이 출간됐다. 1999년 일본에서 출간된 그의 두번째 소설집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국내에서는 처음 출간되는 메도루마의 작품집이다.
이중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과 기야마 쇼헤이 문학상을 받은 작품 '혼 불어넣기'는 혼을 불러내는 과정을 통해 전쟁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작품.
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우타는 평소 아들처럼 여기던 고타로가 바닷가에서 술을 마시다 혼이 빠져나가자 혼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불려온다.
전쟁 고아 고타로는 어릴 때부터 툭하면 혼이 나가곤 했으나 이번에는 우타의 초혼의식으로도 혼이 돌아오지 않고, 심지어 혼이 빠져나간 고타로의 몸에 소라게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여러날이 지난 후 우타는 멍하니 앉아있던 고타로의 혼이 바닷가로 가 바다거북이 알을 낳는 모습을 지켜보는 모습을 발견하고, 예전 전쟁 때 바다거북 알을 가져오려다 총에 맞아 죽은 고타로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표제작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은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직전인 197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아버지가 남겨준 특별한 술을 간직하며 살아온 '브라질 할아버지'와 한 소년의 교감을 그린 소설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나'는 30년간 브라질에서 살다왔다고 해서 '브라질 할아버지'로 불리는 마을의 혼자사는 노인을 일주일에 두세번씩 찾아가 할아버지의 허풍 섞인 브라질 체험담을 듣곤 한다.
신나게 늘어놓는 브라질 이야기와 달리 어린 시절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던 할아버지는 어느날 검게 그을린 단지 속 술을 한 컵 따라주며 처음으로 그 술에 얽힌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다.
"불꽃이 튀어 올라도 나비 떼는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개 빛깔들이 아름다웠다. 파란 여름 하늘 안쪽에 아직 이 세계로 내려오지 못한 무수한 나비들이 날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103쪽)
이와 함께 투계를 통해 숨겨진 폭력성을 다루는 '투계', 사춘기 소년의 일상을 그리면서 미국기지 문제를 다루고 있는 '붉은 야자나무 잎사귀' 등 모두 6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유은경 옮김. 256쪽. 1만원.
고미혜 기자
mihye@yna.co.kr
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