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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창작[한국일보2007.10.06]
 Asia  | 2007·10·06 12:25 | HIT : 3,945 | VOTE : 912 |
베트남 농촌의 신산한 삶 메콩강은 알까
'끝없는 벌판' / 응웬옥뜨 지음·하재홍 옮김 / 아시아 발행·167쪽·9,000원


2005년 베트남 문단은 신진 소설가 응웬옥뜨(31)씨의 중편 ‘끝없는 벌판’ 발표로 소란해졌다.
1976년생 여성 작가가 메콩강 삼각주의 궁핍한 농촌 지역을 무대로 쓴 잔혹한 성장소설은, 선악으로 나뉜 전형적 인물과 시련-투쟁-승리란 도식적 구성의 전쟁소설 일색이던 기존 문학과 철저한 결별을 선언하고 있었다.

문단에선 “주제, 소재, 표현기법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와 “가난, 매춘, 부정부패만 강조하고 희망의 전형을 세우지 않았다”는 비판이 팽팽하게 맞섰다. 논쟁은 작년 초 이 작품이 베트남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작가협회 최고작품상’을 받으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독자들은 환호했다. 그해 말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출간된 소설집은 발간 이틀 만에 초판 5,000권이 매진됐고, 현재까지 8만 권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문학 독자층이 얇은 이 나라 출판시장에선 이례적인 흥행으로, “응웬옥뜨로 인해 베트남에 베스트셀러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베트남문학 전문가 하재홍씨는 “응웬옥뜨는 천재 시인 리홍리(32), 파격적 성적 묘사의 소설가 도호앙지우(31)와 함께 베트남 문단을 주름잡는 신예 여성작가 트로이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을 흥분시킨 이 중편소설이 단행본으로 번역 소개됐다. <하얀 아오자이>(응웬반봉 지음), <전쟁의 슬픔>(바오닌),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반레)에 이어 네 번째로 출판된 베트남 소설이다.

<끝없는 벌판>(아시아 발행)의 국내 출간에 맞춰 방한한 응웬씨는 4일 기자와 만나 “전쟁소설이 열에 아홉인 베트남 소설의 편향에 다들 질려하고 있다”며 “작품을 틀짓는 문학이론에 상관하지 않고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창작을 한다”고 말을 꺼냈다.

작품 속 ‘나’는 홀아버지와 연년생 남동생을 둔 10대 소녀. 이 떠돌이 가족은 나룻배로 메콩강을 오가면서 오리 사육으로 생계를 잇는다.

어머니는 자신의 간통을 남매에게 들킨 걸 알고 가출했고, 배신감에 겨운 아버지는 가족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채 여자들을 상대로 통정과 배신을 거듭한다.

어느날 매춘 때문에 폭력배의 뭇매를 맞던 젊은 여자가 세 가족의 배로 피신한다. 가족의 일원이 되려 애쓰는 그녀를 매춘부 취급하는 아버지와, 그녀에게 모정과 애정을 동시에 느끼는 남동생 간엔 파국적 갈등이 찾아든다.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시점,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빚는 묘한 아우라가 작가가 추구하는 ‘본능적 글쓰기’의 일단을 보여준다.

작가는 가난과 남성 중심 문화에서 비롯하는 폭력과 매춘, ‘조류독감’이란 비상 상황을 착취와 군림의 기회로 삼는 공무원의 부패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이 작품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란 정격에 충실한 파격임을 입증한다. 이에 비해 무뢰한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나’가 “세상에, 내가 아이를 낳을 수도 있어. 비록 잔인한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158쪽)고 다짐하는 결말은 너무 ‘초월적’인 것이 아닐까. 응웬씨는 “개인적으론 이런 결론에 전적으로 동감하지 않지만 작품을 쓸 땐 나이 든 사람처럼 완숙하고 노련한 관점을 취하려 한다”고 답했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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